007 카지노 로얄(2006) - 시리즈 부활의 초석을 다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 시리즈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기나긴 역사를 가진 007 시리즈는 50여년의 세월 동안 갖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시리즈를 지속시켜왔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007 시리즈는 또 한 번의 위기를 겪게 되는데, 이유는 007 어나더데이의 실패 때문이다. 물론 상영 당시 큰 논란을 빚었던 한국을 제외한다면 흥행성적은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007 어나더데이는 영화의 내용 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더군다나 전작까지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았던 피어스 브로스넌이 후속작에 출연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007 시리즈는 그야말로 난항에 빠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작진이 선택한 건 다름 아닌 시리즈의 전면 리부트였다. 과거에 비공식적으로 제작된 적이 있긴 하지만, 정식으로 007 시리즈에 속하지는 않은, 그러나 007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카지노 로얄을 제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어찌보면 007 최초의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프리퀄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20편의 007 시리즈가 알게 모르게 연속선상의 이야기로 이어진 반면, 카지노 로얄은 전작들과의 연결고리가 없다. 그리고 프리퀄이라면 007이 소련과의 냉전 시대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만큼, 그 시대의 이야기를 다뤄야하겠지만, 21세기에 냉전 시대 007의 이미지를 가져온다는 건, 여러모로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그렇기에 분명히 007 최초의 사건이지만, 시대적 배경은 현대가 되었다. 즉, 007 카지노 로얄은 배트맨 비긴즈와 마찬가지로 시리즈의 프리퀄이자 일종의 리부트라고 볼 수 있겠다.

 

  50년이란 세월 만에 최초로 실행되는 리부트였던 데가가 007 어나더데이의 혹평을 만회해야했기에 감독 선정이 무척이나 중요했는데, 카지노 로얄의 감독으로 선정된 이는 마틴 캠밸이었다. 마틴 캠밸은 과거 007 골든아이로 007 시리즈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던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팬들로서도 딱히 불만이 있지는 않았다. 문제는 배우선정이었다.

 

  새로운 007로 선정된 다니엘 크레이그는 비록 유명한 스타배우는 아니었지만, 연기력만큼은 어느 정도 인정받은 배우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이미지가 50년 동안 쌓아올린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져 있었다는 것에서 발생했다. 기존의 제임스 본드는 이성적이면서도 매너 좋은 젠틀맨의 이미지였던 반면, 다니엘 크레이그는 젠틀맨하고는 다소 거리가 먼 이미지였다. 이런 다니엘 크레이그가 새로운 007로 선정되었으니 기존 팬들의 반발은 보통 큰 게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다니엘 크레이그는 이러한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007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007의 역할을 잘 소화해낸 데에는 그가 좋은 연기를 보여준 것도 있지만, 카지노 로얄에서 기존 007의 캐릭터에 변화가 찾아온 것도 한 몫했다. 앞서 언급했듯 카지노 로얄은 리부트이자 프리퀄로 007 최초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007은 기존에 완벽하게 일처리를 하는 모습과는 달리 조금은 미숙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미숙한 일처리와 더불어 적과의 전투에서도 각종 첨단기기를 사용하여 능수능란한 액션을 보여주기보다는 몸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 부분은 조금은 우락부락한 느낌이 드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모습과 잘 맞아떨어졌다.

 

  물론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다니엘 크레이그의 탄탄한 연기력이 바탕이 되었다. 리부트라고는 하지만 본질은 제임스 본드이기에 카지노 로얄에는 기존 제임스본드가 보여주던 모습, 예를 들어 플레이보이 같은 모습 역시 나타나는데, 다니엘 크레이그는 기존 제임스 본드의 모습에다가 자신 만의 개성을 잘 엮어서 지금까지와는 조금 느낌이 다른 우직한 제임스 본드의 모습을 잘 살려내었다.

 

  작중의 내용 전개는 매우 빼어났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제작진이 원작을 바탕으로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게 보였고, 적어도 프리퀄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해냈다. 카지노 로얄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조금은 미숙한 제임스 본드의 모습, 그리고 그가 오랜 세월 007로서 활약하게 된 계기를 잘 보여주었다.

 

  다만, 이번 사건에서 제임스 본드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건, 본드의 연인 베스퍼인데, 제임스 본드와 베스퍼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부분까지는 나름대로 타당한 전개를 보여주었지만, 둘이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는 석연찮은 부분이 있었다. 본드가 고문을 당한 이후, 둘은 급격하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전에 그럴 만한 결정적인 계기가 있어야하지만, 아쉽게도 카지노 로얄에서는 그 부분이 드러나지 않았다. 물론 이전에 작품의 명장면 중 하나인 샤워실에서 본드가 베스퍼를 위로하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이 부분은 사랑의 계기라기보다는 본드와 베스퍼가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계기에 가까웠다. 작중의 러브라인은 카지노 로얄에 기본 뼈대라고 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이 부분에서 느슨한 전개를 보여준 건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이 부분을 제외한다면 카지노 로얄은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스토리 전개를 보여주었고, 앞서 언급한대로 색다른 007의 모습과 그를 뒷받침해주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열연으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또한, 007 최초로 연작 구조를 취하면서 카지노 로얄에 대한 만족감을 자연스럽게 후속작으로 연결시켰다. 어나더데이 이후 잠시 주춤했던 007 시리즈는 위기탈출을 위해 최초의 사건으로 돌아갔고, 적절하게 변화를 가미한 결과, 시리즈 부활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다.

  • ㅎㅎㅎ 2012.09.03 00:24 ADDR 수정/삭제 답글

    군대에서 본 영화 중 하나죠(군대에서 참 영화 많이 본것 같네요. 지키라는 나라는 안 지키고..^^;)나름 꽤 재미있게 본 편입니다. 기존의 제임스 본드 이미지와는 다른 다니엘 크레이그의 연기도 인상깊었고 베스퍼는 완전 절대미인이란 소리가 나올만큼 놀라운 미모를 보여줬지요. 뭐 그때문인지 몰라도 지금에 와서는 스토리보다도 두 배우의 이미지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듯 합니다.ㅎㅎ

    • 성외래객 2012.09.03 22:04 신고 수정/삭제

      저만해도 처음 다니엘 크레이그가 007이 된다고 했을 때, 너무 제임스 본드 이미지랑 동떨어져있지 않나 생각했었는데, 그런 생각을 완전히 날려준 멋진 연기를 보여준 것 같습니다. 베스퍼 역의 에바 그린도 열연을 보여줬죠. 에바 그린이란 배우 자체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유독 돋보였던 것 같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