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영화였다(2007) - 파란만장했던 한 감독의 인생사

난, 영화였다
8점

  한국 영화계가 90년대에 들어와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6~70년대에 활약했던 인물들이 별로 조명받지 못하는 느낌이 있는데, 이 책의 저자 신상옥 감독은 한국 영화 초창기에 크나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60년대에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어내었으며, 한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신필름이라는 헐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에 가까운 시스템을 만들어낸 인물이 바로 신상옥이다. 이 책은 신상옥 감독이 별세하고 1년 후, 출간된 신상옥 감독의 자서전이다. 

 

  사실 신상옥 감독은 당시 독재정권에 어느 정도 영합하여 영화사를 운영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기도 하는 인물인데-이 부분은 보는 시각에 따라 영합했다고 보는 쪽도 있고, 당시 한국 영화계를 조금이라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해당 인물에 대한 호불호는 둘째치더라도, 한 분야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건, 그 자체로도 재미있는 법이다.

 

  이 책의 전반부에는 그가 한창 한국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활약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주로 수록되어있는데, 워낙에 영화에 대한 기반이 잡혀있지 않았던 시기였던지라, 그야말로 악으로 깡으로 영화를 만들어나가던 이야기도 많이 수록되어있다. 시나리오가 완성되지 않아서 낮에는 촬영하고 저녁에는 시나리오를 쓰는 걸 반복했던 이야기, 유명배우들의 중복촬영으로 영화 제작팀끼리 대립했던 이야기, 며칠 만에 영화를 찍어낸 이야기 등 그야말로 그 시절에나 가능했을 법한 일들은 한국 영화 초창기의 모습을 꽤나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한국 영화 초창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 외에도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신상옥 감독의 삶 그 자체다. 신상옥 감독은 영화 감독으로 데뷔 이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영화계 선배의 아내였던 최은희와 결혼까지 하게 되면서 한국 영화계에 큰 파장을 몰고 온 적도 있었고, 북한에 납치되어 탈출하기 전까지 북한에서 불가사리 등의 영화를 만들기도 했으며, 탈출 이후에는 헐리우드에서 헐리우드식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세계에서는 유일하게 한국, 북한, 헐리우드의 영화시스템을 경험해본 인물이 바로 신상옥 감독이다.

 

  이렇듯 이 책에는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부분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책을 덮는 순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나 영화를 향한 신상옥 감독의 열정이다. 신상옥 감독의 파란만장한 인생사에서 그의 행동을 결정지은 건 어떻게하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신상옥 감독은 독재정권의 칼날 아래에서도, 북한의 억압적인 환경 속에서도, 헐리우드라는 선진화된 시스템 속에서도 언제나 변함없이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헐리우드의 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하여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또 다른 신작을 준비했다.

 

  결국 이 책이 담아내고 있는건, 한 사람이 특정 분야에 일평생을 바쳐온 순수다. 신상옥이란 인물이 만들어온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한 비판을 떠나서 한 사람의 평생에 걸친 영화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