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왕 바하문트

                                           

                                                          
                                                       흡혈왕 바하문트 1
                                                         6점   
규토대제 완결 이후 꽤나 오랜 시간 침묵했던 쥬논 작가는 08년의 시작과 함께 흡혈왕 바하문트라는 작품을 내놓는다.

사실 흡혈왕 바하문트 처음 나올 때부터 '아 이건 무조건 봐야해'라며 벼르고 있었지만 쥬논 작가의 작품 특성상 완결 나고 보는게 내 정신건강에 이로울 거란 생각도 들었고 09년에 군대를 가리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수많은 호평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꾹 참았었다.

그리고 전역 후 제일 처음 집어 든 장르문학이 바로 흡혈왕 바하문트.

그만큼 쥬논 작가에 대한 기대감은 꽤나 컸다.

그러나...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흡혈왕 바하문트는 기대 이하의 작품이었다.

흡혈왕 바하문트에서 플루토는 표지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활용된다. 플루토란 일종의 로봇병기로 국내 판타지 시장에서는 묵향을 시장으로 이미 여러차례 쓰인, 어찌보면 꽤나 흔한 소재라 할 수 있다.

흔한 소재이긴 하지만 원래 그렇게 흔하게 쓰였다는 건 그게 재미있는 소재이기 때문이지 않은가? 더군다나 이번에 그 소재를 쓰는 건 다름 아닌 쥬논 작가. 그렇기에 초반부터 쥬논 작가가 플루토를 어떤 식으로 활용할 지에 많은 기대감을 가졌다.

화려한 전투씬을 자랑하는 쥬논 작가답게 로봇병기들 간의 전투는 상당히 재밌는 편이었다. 특히 후반부에는 생물형 플루토나 마법사형 플루토가 등장하며 플루토끼리의 대결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었다.

문제는 플루토가 너무 강하다는데 있다.

플루토로 인해 전략, 전술의 개념이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사실상 가장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어어야할 12년 전쟁 부분은 오히려 초반부보다 몰입도가 떨어졌다. 솔직히 말이 전쟁이지 플루토의 개수와 강도에 따라 승부가 갈리는데 이게 과연 정상적인 전쟁이라 할 수 있을까? 숫자놀음이지.
 
그러니 분명 설정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전쟁임에도 불구, 그다지 긴장감이 없었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는 유독 뭐하는데 몇 초, 뭐하는데 몇 초, 다 합쳐서 몇 초 만에 뭘 했다라는 식의 묘사가 많은데 개인적으로 지금은 괴수물로 전락한 붉은매가 생각나서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

물론 이 부분은 스토리라인 쪽에도 많은 문제가 있지만 플루토라는 설정에도 커다란 문제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전작들에 비해 주인공의 위기 장면이 그리 긴장감 넘치지가 않았다. 바하문트 역시 수차례 위기를 겪기는 하지만 그 장면을 벗어나는게 너무 쉽게 쉽게 그려지고 주인공의 위기상황들이 비슷비슷하다보니 그렇게까지 긴장감이 흐르지가 않았다.

그리고 아무리 바하문트가 11개의 플루토를 다룰 수 있는 강자라 하더라도 세계최강국과 일전을 치루는 거 치고는 너무 위기가 없었다. 운도 너무 좋았고.

그리고 이상하게 인물들의 개성도 전작들에 비해 그리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주인공인 바하문트는 물론 사바나, 필리아, 꾸루, 나파 등 잘만 다듬었으면 전작 못지 않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많음에도 불구, 이들의 개성은 그리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문제점은 쥬논 작가 특유의 후반부에 갑자기 모든 비밀을 풀어놓는 구조에 있다.

쥬논 작가는 처녀작인 앙신의 강림 때부터 한 작품에서 두 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구조를 택했었다. 하나는 현재 세계의 이야기, 그리고 하나는 이 세계에 얽힌 비밀에 대한 이야기.

개인적으로 앙신의 강림과 천마선에서는 이 두 가지 이야기의 비중이 어느 정도 맞아들어갔고 그래서 이야기의 몰입도를 더욱 높여주었다고 생각하지만 규토대제와 흡혈왕 바하문트에서는 이 부분이 상당히 실패했다 느껴진다.

이유는 떡밥을 어느 정도 던져주고 후반부에 터뜨려야하는데 규토대제와 흡혈왕 바하문트의 경우 너무 조금만 풀어놨다가 후반부에 가서 이야기를 확 풀어놔버려서 갑작스런 마무리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점이다.

흡혈왕 바하문트는 로열 블러드와 둠블러드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바하문트의 12년 전쟁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문제는 이 두 이야기가 너무 따로 논다는 점이다. 바하문트가 12년 전쟁을 치루면서 과거의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은 너무나 부자연스럽다. 갑자기 이야기가 진행되는 도중에 전혀 언급도 없었던 책을 통해 진실을 어느 정도 알아가고, 또 한참 이야기 진행하다가 우연히 예전에 들은 노래가사에서 과거를 유추하고.

이야기 마지막에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세계의 진실을 바하문트가 자연스럽게 알아가는게 아니고 12년 전쟁 종료 후 한 20페이지에 걸쳐서 그냥 서술된다.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드는게 아니라 그냥 설정집을 읽은 느낌이랄까. 세계의 진실에 대한 요약정리본을 읽는 느낌이었다.

이럴 거면 12권에 걸쳐서 바하문트의 이야기는 왜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설정집으로 내지.

그렇다고 본편의 이야기도 제대로 마무리되는게 아니다. 12권에서 12년 전쟁은 프롤로그에서의 예고와는 다르게 그야말로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뭐 우고트 왕국과의 결전까지는 그러려니 한다만 나파와의 대결은 도대체 뭔가.

전권에 걸쳐 가장 강력한 보스로 묘사되던 나파는 고작 3페이지만에 바하문트에서 흡수당해서 죽는다. 독자는 도대체 이런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걸까?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열받던데.

흡혈왕 바하문트가 아니라 소드마스터 바하문트인가? 규토대제 때도 이 부분에서 상당히 실망했는데 후속작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여서 상당히 실망스럽다.  

쥬논 작가 정도면 그래도 이쪽에서는 어느 정도 네임밸류가 있는 작가이며 팬층도 두터운 작가이기에 조기종결의 압박을 받았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규토대제 때까지만 해도 이해하려 했다만 연속으로 이런 식의 결말을 냈다는 건 작가로서 직무유기가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원래 쥬논 작가가 독창적인 세계관에 비해 설정 오류가 많은 걸로 유명하긴 하지만 이번 작품은 유독 심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야기 자체의 재미에 비중을 두기 때문에 어지간한 설정오류는 눈감고 넘어가는 편이다.

그런데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부분들까지도 이래버리면 이건 작가가 너무 허술하게 이야기를 짜논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자세한 부분은 네타이기도 하고 여러 팬들이 언급해놓았기에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이 정도의 설정오류면 이야기의 중심축이 흔들릴 정도다.

아무리 매력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면 뭘하나.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이 엉망진창인데.

규토대제 때도 엔딩 부분 때분에 상당히 실망했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개과정이 재미있었고 앙신의 강림과 천마선이 워낙에 좋았기에 어느 정도 만족은 했다.

하지만 흡혈왕 바하문트는 정말 완벽하게 실망이다.

물론 쥬논 작가의 작품인만큼 기본 이상의 재미는 보여주지만 고작 이 정도의 재미 때문에 쥬논 작가의 작품에 매료된게 아니었다. 앙신의 강림과 천마선에서 보여주었던 카리스마 넘치는 결투들과 탄탄한 스토리라인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아직도 앙신의 강림이란 이름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설렌다. 그만큼 쥬논의 처녀작이 준 임팩트는 매우 강렬했다.

최근 샤피로라는 신작을 내고 있던데 이 작품은 흡혈왕 바하문트의 실패를 거름 삼아 예전의 포스를 보여줬으면 한다.

  • cienin 2011.05.01 13:28 ADDR 수정/삭제 답글

    99%공감합니다.. 에휴 ㅠㅠ 저같은 경우에는 바하문트를 읽는 내내 앙강과 규토대제가 겹쳐서 떠오르더군요... 분명 같은작가의 후기작임에도 불구하고 앙신의 강림을 베껴 만든듯한 느낌? 인위적이랄까, 앙강의 경우 작가가 만들어내는 주인공의 패기랄까, 카리스마가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바하문트는 그런 주인공의 포스를 작위적으로 만들어 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 성외래객 2011.05.01 22:55 신고 수정/삭제

      저도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문제는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다운그레이드(...)
      바하문트에 대한 말씀은 정말 공감됩니다. 바하문트의 카리스마는 작중에서 만들어내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소재는 괜찮았다 생각되는데 이래저래 기대했던 것보다는 많이 아쉬운 작품입니다.

  • 바하문트 2011.07.11 09:48 ADDR 수정/삭제 답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전아주재밌게보고있습니다 물론 앙강 천마선 규토다밨구요 전규토가 임팩트가없어읽다가포기했고 이번샤피로도별로더군요 책볼줄모르구나이런말하시는분들이더못보더라구요 서로취미특기가다르듯 책도스타일이다른가봅니다

    • 성외래객 2011.07.11 20:25 신고 수정/삭제

      사람마다 취향은 다른 법이니까요ㅎㅎ
      제가 재밌게 읽은 책이 다른 분에게는 별로일수도 있는거고 제게 별로였던 책이 다른 분에게는 재밌을 수도 있는 거죠. 샤피로는 아직 읽어보지 않은지라 아직은 평하기 힘드네요~^^

  • 샤피로 2011.08.05 14:09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도 규토대제를 쥬논작가 작품중 제일 먼저 봤엇는데 구성이 마음에 들어서 앙신의강림,천마선을 그 뒤에 찾아서 읽엇는데 첫2작품에 비해선 규토대제가 많이 떨어지더라구요 ㅋㅋ
    바하문트도 떡밥을 너무 작게 줘서 쥬논 특유의 반전이랄까 그런 매력이 많이 떨어졌던것 같구요
    근데 샤피로는 꽤 재밌습니다 ㅎㅎ 다시 예전의 필력을 찾으신것같아요

    • 성외래객 2011.08.05 16:39 신고 수정/삭제

      앙신과 천마선에 비해서 규토대제와 흡혈왕 바하문트는 뭔가 많이 아쉬운 작품이 되어버렸죠. 이번에 샤피로는 많은 사람들이 호평을 보내고 있던데 부디 마무리까지 잘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ㅎㅎ

  • 도폭공룡 2011.11.25 22:22 ADDR 수정/삭제 답글

    작가로써 쥬논의 가장 큰 문제점은, 끊임없이 자기작품을 재생산한다는 거죠. 천마선이나 바하문트, 규토대제는 사실상 앙강을 자기표절한 거니까요. 그나마 처음에는 자기 스타일을 재생산 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여지가 있지만, 뒤로 갈수록 새로운 여지가 없어질 수 밖에 없죠. 샤피로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간 그래서, 꽤나 충격적인 작품이었던 앙신의 강림에 비해 천마선은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면 앙강처럼 신선하고 충격적이지는 못했고, 규토에 오면 그저그런 평작이 되어 버리고, 바하문트는 규토만도 못해지고 말았죠.

    • 성외래객 2011.11.25 23:03 신고 수정/삭제

      천마선 때까지는 좋았습니다. 앙신의 강림보다는 확실히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장을 덮을 때 만족스러운 시리즈였죠. 그리고 두번째 작품이라는 걸 감안하면 어느 정도의 자기복제는 감안해줄만 했습니다.

      역시나 문제는 규토대제부터죠. 일단 이야기 구조부터가 전작들에 비해 문제점이 많았고, 앙신의 강림과 천마선에 장점들을 뒤섞으려다가 이도저도 안 된 느낌이었거든요.

      그리고 그 다음 나온 흡혈왕 바하문트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1,2권을 읽을 때부터 앙신의 강림보다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후반부에 이 정도로 망가질 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최근 나온 샤피로는 완결나면 보려고 기다리는 중인데 이 작품을 토대로 쥬논 작가에 대한 제 평가가 수정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앙신의 강림이나 천마선의 기억이 남아있어 어느 정도 호의적이지만 샤피로까지 실망스러운 전개를 보여준다면...글쎄요, 쥬논의 작품을 보기야 하겠지만 예전만큼의 설레임을 가지고 기다릴 것 같지는 않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