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파이어

                             
                             헬파이어 1
                            4점

다크문, 하얀 늑대들의 저자인 윤현승 작가의 두번째 장편 소설 헬파이어.

사실 이 책은 윤현승 작가의 저서 중에서 가장 언급이 안 되는 책이다. 실제로 각종 포털 사이트에 이 책을 검색해보면 감상글은 몇 개 뜨지도 않고 오랜 시간 여러 개의 판타지 커뮤니티를 봐왔지만 이 책이 언급된 적은 거의 없었다.

판매량도 그리 좋지는 않았는지 각종 중고서적 사이트에서 이 책을 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 같은 경우는 어떤 책을 사려고 중고서점을 뒤지다가 이 책을 싸게 파는걸 발견하고 구매하게 되었다.

그리고 읽어본 결과, 이 책이 어째서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지, 왜 묻혀버려야만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책을 통해 윤현승 작가는 SF라는 장르에 도전하고 있는데 솔직히 1권 중후반부까지만 하더라도 이 책은 상당한 몰입도를 보여주었다.

부분적으로 기억을 잃은 남자가 눈을 떠보니 보이는 건 파괴된 서울, 그리고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끔찍한 괴물들.

솔직히 설정 자체가 매우 독창적인건 아니지만 윤현승 작가는 탁월한 이야기꾼답게 책의 초반부를 괜찮게 풀어나간다. 특히, 폐건물에서 펼쳐지는 괴물과의 혈투는 이 책 전체를 통들어서 가장 긴장감 넘치는 전투씬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요인물 중 하나인 한별을 만나고 난 후, 이 책은 다소 지루한 전개를 보여준다.

한별과 만난 후, 둘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는데 이 부분은 너무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뿐만 아니라, 둘이 나누는 이야기의 질 자체도 그리 좋은 편이라 하기 힘들었다.

이 둘의 이야기는 공감이 가지도 않았고, 이야기의 맥을 끊어버린다는 느낌마저 주었다.

또한, 한별을 만난 후 1권의 전개는 괴물의 습격으로 인한 전투->한별과의 대화라는 구조를 반복한다. 거의 1권내내 이러한 전개가 반복되기 때문에 전투씬을 아무리 박진감넘게 그렸더라도 읽는 사람에 입장에서는 다소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은 2권에 들어가면서 더욱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1권 도입부와 마찬가지로 남자 주인공의 비밀이 어느 정도 밝혀지는 2권의 도입부는 그나마 괜찮았다.

그러나 이후의 전개는 1권보다 더한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주인공, 하데스가 거의 불사에 가까운 능력을 보여주었기에 괴물과의 전투씬은 이제 그렇게까지 긴장감을 주지 않았고, 왜 하필 주인공이 헬파이어로 선택되었는가에 대한 설명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야기 내내 하데스가 고등학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요소처럼 다뤄지지만 실제로 밝혀진 진실은 굳이 고등학생을 헬파이어로 만들 필요가 있었는가라는 의문만 들게 했다.  

그리고 중반부에 하데스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은 차라리 코미디였다. 납득이 가고, 가지 않고를 떠나서 이 장면은 이야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데스가 다시 살아났다는 의미가 있긴 하지만 정체성에 관한 고민은 지금까지와의 이야기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설정이었기에 생뚱맞다는 느낌 밖에 주지 않았다.

거기다 마지막에 루카스 박사가 한별을 총으로 쏜다던가, 사이보그가 하데스에게 승부욕을 불태운가하는 장면들은 이해는 가는데 공감이 가지 않았다. 특히, 지구를 핵으로 밀어버리겠다는 루카스 박사의 계획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리수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마지막에 상자가 열리면서 보여주는 엔딩은 혹시나 했는데 결국 이런 엔딩으로 가는구나 싶은 엔딩이었다. 

적어도 한별이 맨 마지막을 제외하면 줄곧 인간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설마하긴 했지만 이런 식의 급해피엔딩으로 이야기를 끝맺을 줄은 몰랐다.  

참, 여러모로 아쉬운 소설이다. 일단 설정이나 기본 스토리 구조는 괜찮았지만 그것이 글에 잘 녹아들지 못한 느낌이었다. 또한,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행동들은 뭔가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시도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잘 짜여진 소설을 기대하고 봤다가 뭔가 어설픈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작가가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려는게 많이 느껴지긴 했다. 이러한 시도들이 쌓여서 후에 하얀 늑대들과 같은 걸출한 작품을 낸 것이니 이 책도 어느 정도 의의가 있지는 않은가 싶다.
  • 도폭공룡 2011.11.25 21:48 ADDR 수정/삭제 답글

    사실, 윤현승씨는 한국 판타지 작가치고 상당히 다작한 편이고, 그래서 그런지 초기작은 좀 묻히는 편이죠. 헬파이어 말고, 흑호던가.. 동양 분위기의 판타지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도 지명도는 거의 헬파이어하고 비슷하잖습니까? 작품 수준도, 당시 기준으로 꽤 실험적이고 독특하기는 한데 완성도는 좀 불만족 스럽다는 점에서 비슷하구요.

    다크문 같은 경우도, 분량이 많은 작품인데다가 출세작이고 판매량도 상당했던 덕분에 지금까지도 윤현승이라고 하면 다크문이 꼽히기는 하지만, 역시 완성도는 그저 그렇다고 봅니다. 재미있게 읽힐만한 소재들을 많이 만들어내긴 했지만 서사 자체가 소재에 기대는 부분이 너무 강하고, 인물이나 사건, 이야기의 구성도 약간 식상하고, 뭣보다 두서없이 늘어지는 부분이 너무 많았죠. 기본적인 이야기의 큰 흐름을 중심으로 하긴 하지만, 꼭 필요한 건 아닌 이야기들이 가지치고 나가는 느낌이었어요.

  • 도폭공룡 2011.11.25 21:50 ADDR 수정/삭제 답글

    그래서 저는 사실 더스크워치하고 하얀늑대들 나오기 전까지는 윤현승씨를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었죠. 흑호에서 더스크워치, 하얀늑대들 사이는 기간도 좀 떨어져 있었고, 작품성도 크게 발전했으니까요.

    • 성외래객 2011.11.25 22:57 신고 수정/삭제

      확실히 윤현승 작가의 초기작은 묻히는 경향이 있죠. 개인적으로 다크문은 재밌게 보긴 봤는데 확실히 최신 작품들에 비해서는 떨어지는 작품들인지라 읽을 당시에는 재미 있는 글을 쓰는데에는 성공했으니까 작가가 꾸준히 작품활동을 한다면 좋은 작품을 쓰지 않을까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헬파이어는 꽤나 실망스러웠고 제가 윤현승 작가를 높게 치기 시작한 건 흑호부터죠. 이 때부터 발전하기 시작하더니 하얀 늑대들부터는 그야말로 수준급의 작품을 내놓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