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글쟁이들

                       
                         한국의 글쟁이들
                      8점

블로그에도 쓴 적 있는 '서른 살 직장인, 책읽기를 배우다'라는 책을 통해 처음으로 한겨례의 구본준 기자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이번 학기에 수업을 듣던 중, 교수님이 '한국의 글쟁이들'이라는 책을 추천해주셨는데 그 책의 저자가 구본준 기자인 걸 알고 바로 도서실에 가서 책을 빌렸다.

관련 책 리뷰에도 적어놓았지만 개인적으로 '서른 살 직장인, 책 읽기를 배우다'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는데 저자도 같은데다가 주제 역시 비슷했기에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서른 살 직장인, 책읽기를 배우다라는 책이 우리나라의 책벌레들을 인터뷰한 책이라면 한국의 글쟁이들이라는 책은 제목에 걸맞게 한국의 글쟁이들, 즉 한국을 대표하는 18인의 저술가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다만 여기서 인터뷰한 이들은 소설가나 시인이 아닌 말그대로의 저술가를 의미한다.

처음에는 비교적 독자들에게 익숙한 사람들이 나오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인지도는 낮지만 관련 분야에서는 1인자로 인정받고 있는 사람들이 주로 등장한다.

보통 글 쓰는 사람이라고 하면 밤늦게까지 글을 쓰고, 술을 좋아해 생활패턴은 꼬일 대로 꼬인 사람일 거라는 인상이 강한데, 나 역시 과가 과인지라 그런 편견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지만 아무래도 그런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온 18인의 저술가들을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자기관리에 철저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루를 잘게 쪼개서 글이 잘 써지는 시간을 정해놓아서 매일 꾸준히 그 시간에만 글을 쓰며 내일의 일정이 흐트러질 수도 있기에 저녁약속은 최대한 잡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어딘가에 소속되어있지 않고 혼자서 살아나가야하기 때문에 이러한 자기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한다.

또한, 그들이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저술가가 되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이 책에서 인터뷰한 인물 중 한 명이자 미쳐야 미친다, 한시미학산책 등의 저자인 정민 교수의 경우 아예 병원에서 사용하는 환자 차트 거치대를 사놓고 거기다가 자료를 자신의 방식대로 분류해놓기까지 한다.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의 저자 주강현 씨는 아예 집에 제본기를 사다놓고 필요할 때마다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제본을 떠서 자료를 정리해놓고.

그리고 교수님이 이 책을 추천해주신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메모하는 습관 때문인데 18인의 저술가는 각각 글 쓰는 스타일이나 자료 정리 스타일은 다르지만 모두가 메모가 생활화되어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비야 씨의 경우는 기자라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생각나는게 있다며 계속 메모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보면서 각각의 스타일은 다르겠지만 자료를 모으고 메모를 하고 책을 내기까지의 모습을 보면서 결국 글쟁이의 가장 큰 원칙은 서로 통하게 마련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그 밖에도 한국의 대표적인 글쟁이들과 인터뷰를 한 내용이기 때문에 한국 출판 시스템의 문제점이나 나아갈 방향, 그리고 외국 출판계의 흐름에 대해서도 간간이 언급이 되는데 최근 이런 쪽으로 관심이 많았던 지라 더 집중하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책을 덮고 생각난게 그래도 이 책은 한국의 내노라하는 저술가들을 인터뷰한 책인데 여성 저술가는 한비야 한 명 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 책에 실리지 않은 저술가도 많고 그 중에는 여성 저술가들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저술가라는 측면에서 성공한 여성은 적다는걸 새삼 느꼈다.

또 하나 느낀 건 18인의 저술가 중 몇명은 본래 교수를 꿈꾸던 사람들이었으나 한국 교수사회의 병폐로 인해 그 뜻이 좌절된 사람이 많다는 것. 이 책에 실린 인물들이 본격적으로 저술활동을 시작한 건 대개 10년 이상이 되었으니 지금이야 이런 점들이 조금 완화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도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 걸 보면 문제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저술가들을 보며 새삼 독서의 폭을 많이 넓혀야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마지막으로 2000년대 들어와서 인문학의 위기라는 소리가 많이 들리고 있고, 나 역시 인문학도이기에 같은 학생들이나 교수님들에게서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역시나 어딘가에 살 길은 있다는 걸, 그리고 인문학의 위기는 결국 정통적인 인문학의 위기라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