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세계적인 RPG 시리즈를 언급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작품이 바로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다. 그리고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게이머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첫 스타트를 끊은 작품이 바로 1987년 발표된 파이널 판타지다.
사실 파이널 판타지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내려온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시작점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첫 작품이라 그런지, 후속작들과는 여러모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초창기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에서 중요한 소재 중 하나였던 크리스탈을 이야기의 주 소재로 삼고 있긴 하지만, 탄탄한 스토리라인으로 이름높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에 첫 작품치고는 스토리가 전반적으로 단순하고, 캐릭터들도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움직이기보다는 그저 게이머가 움직이는 말에 불과한 느낌이다. 물론 이 작품이 나오던 시기에는 전반적으로 요즘처럼 스토리와 캐릭터성이 강조되는 시기는 아니었지만, 1년 후에 등장한 파이널 판타지2와 비교해봐도 파이널 판타지의 스토리와 캐릭터성은 상당히 단순한 편이다.
그렇다고 게이머가 플레이하기에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스토리가 중시되는 대부분의 RPG는 게이머의 동선과 수준에 맞추어 아이템을 제공하기 마련이지만, 파이널 판타지의 경우에는 이러한 점들에 대한 고려 없이 아이템이 배치되어 있어, 나중에 해당 아이템이 필요하면 다시 되돌아가 아이템을 얻어야하는 등,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여러모로 불편한 요소들이 많은 편이다. 그 밖에도 다소 높은 인카운터율, 과한 노가다 요소 등 시리즈의 첫 시작점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파이널 판타지는 여러모로 미숙한 부분이 많은 작품이다.
하지만 이런 미숙한 부분들에도 불구하고, 파이널 판타지는 게임 본연의 재미라는 부분을 놓치지는 않았다. 비록 게이머에게 여러모로 불편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숨겨진 던전, 전직, 마법 업그레이드 등, 단순한 전투 외에도 자잘한 재미 요소들을 계속해서 제공하고 있으며, 비록 스토리 자체는 단순하지만, 적어도 게이머가 몰입할 수 있는 요소들은 적재적소에 배치해놓았다. 또한, 일종의 타임 패러독스를 이용한 결말부의 내용은 지금 시점에서봐도 꽤나 괜찮은 편이다. 또한, 파이널 판타지는 당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드래곤 퀘스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작품으로 작품 곳곳에 드래곤 퀘스트의 영향력이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래곤 퀘스트의 영향을 벗어나고자 나름대로 독창적인 시도들을 게임 내에 도입하였다. 이러한 시도들이 대다수 게이머에게는 크게 어필하지 못했기에, 파이널 판타지는 드래곤 퀘스트의 아류라는 소리를 들어야했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조금씩 쌓여 결국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드래곤 퀘스트의 아류라는 소리에서 벗어나 드래곤 퀘스트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양대 RPG로 성장할 수 있었다.
정리하자면, 파이널 판타지는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명작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게임이다. 하지만 게임 본연의 재미 자체는 어느 정도 잘 살려내었고, 어느 정도 흥행에도 성공해 당시 위기에 빠져 있던 스퀘어를 구해내는데 성공한다. 또한, 드래곤 퀘스트의 단순 아류작이 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 시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은 후에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일본의 대표 RPG가 되는 양분이 되었다. 비록 게임 자체의 완성도는 다소 떨어졌지만,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많은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기반을 세웠다는 점에서, 파이널 판타지는 충분히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