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최악
                     10점

그저 묵묵하게 자기 일하며 열심히 살아온 작은 공장의 사장님, 가와타니 신지로. 한 집안의 맏딸로 착한 심성을 지는 평범한 은행원 후지사키 미도리, 스무살의 나이에 파친코나 하며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노무라 가즈야.

그야말로 어디서나 볼법한 평범한 세 사람은 안타깝게도 어느 시점에부터 서서히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저 친한 거래소 사람의 말만 믿고 사업을 확장하려고 했을 분인데 이웃, 은행과의 갈등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는 자신인데 오히려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고, 그럭저럭 친한 친구 녀석과 한탕하자 생각했을 뿐인데 일은 점점 커져만 간다.

그렇게 하나둘 고개를 내밀던 불행은 점차 세력을 키우더니 그야말로 최악을 향해 질주한다. 더 안 좋은 건 안 그래도 최악인데 상황은 가면 갈수록 악화된다는 거다.

오쿠다 히데오는 유머러스한 이야기 구성으로 많은 독자들을 매혹시킨 작가지만 이번 작품은 자신의 장기인 유머를 싹 빼고 처음부터 묵묵히 이 세 사람에게 찾아온 시련에 초점을 맞춘다.

처음에는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유머러스함을 기대하고 봤던 지라 페이지를 넘기는게 힘들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동안 보여줬던 불행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기 시작하면서 이야기의 가속도가 붙더니 어느 순간 멈출 수 없는 폭주기관차가 되어버린다. 가늠할 수조차 없는 속도로 미친 듯이 내달리던 이야기는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분량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에야 간신히 정상속도를 되찾는다. 그리고 그제서야 독자는 롤러코스터라도 타고온 양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정말이지 이야기 중반부에서부터 보여주는 이 소설의 속도감은 경이로울 정도다.

기존에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그런 느낌은 더할 것이다. 기존 작품에서 야쿠자가 등장하더라도 독자들은 이번엔 어떻게 우리를 웃겨줄 것인가를 기대하기에 긴장감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는 철저하게 유머가 배제되었기에 도대체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전작들이 일종의 활극 같아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면 이 작품은 생생한 현실감과 속도감으로 인해 중반부 이후로는 자그마한 여유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 세 사람은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정도의 악인들이 아니다. 세 사람 중 가즈야는 범죄도 몇 번 저질러 봐서 그럴 만하다 할 지라도 신지로나 미도리 두 사람은 정말 평범한 삶을 살아온 말그대로 소시민이다. 그렇기에 읽는 내내 주인공들에게 찾아온 시련은 독자로 하여금 연민을 느끼게 되고 주인공들이 이 상황을 잘 헤쳐나갈 수 있길 바라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몰입은 미칠 듯한 속도감에 불을 붙인다.

세상에 한풀이 하듯 나 불행하다고 외치는 책은 많았지만 이 책처럼 '진짜 최악의 상황이란 무엇인지 보여주마!'라며 자신이 불행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 질려버리게 만드는 책은 처음이다.

거기에 더불어 최악의 상황이라지만 어쨌거나 공범이 되어버린 세 사람이 맞게 되는 합당한 결말은 어째서 오쿠다 히데오가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평가받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