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훔치다

                     
                      천년을 훔치다
                     4점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로 본격적으로 장르문학 계통에 뛰어든 조완선 작가는 이후 3년 간의 공백을 거친 후, 2011년 천년을 훔치다라는 신작을 발표한다.

전작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 때부터 한국의 인쇄 및 출판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작가는 이번 작에서도 마찬가지로 인쇄 및 출판문화와 관련된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구성했는데, 바로 초조대장경이다.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계기로 만들어진 대장경으로 안타깝게도 몽골군의 침입 때 불타버리게 된다. 그래서 이후 고려 조정에서 만든게 바로 팔만대장경.

현재까지 초조대장경은 그 이름만 전해져내려올 뿐, 실물이 확인되지는 않았는데 작가는 어디엔가 반드시 초조대장경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가설 아래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간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에서도 내용은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한일양국의 유명한 도굴꾼 삼대의 이야기, 일본과 해인사 등에서 발견되는 초조대장경의 흔적들을 추적하는 과정은 확실히 재밌었다.

그러나 전작에 비해서는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우선 인물들을 살펴보자면 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인물은 한국인 도굴꾼 장재석과 일본인 도굴꾼 하야코로 이 둘은 한일 각국에서 초조대장경을 추적해나가고 이야기의 후반부에는 같이 활동하게 된다.

문제는 이야기의 도입부까지는 두 명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 건 나쁘지 않았지만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하야코의 비중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작가는 전작에서부터 일본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 시선을 보내려고 노력해왔고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정작 한일 양국의 주인공이 만나자 이야기의 비중은 재석에게도 급격하게 쏠리게 된다.

그리고 결국 결말 부분에서 비중이 떨어진 하야코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마무리지으려 하다보니 하야코의 결말 부분은 뭔가 비비 꼬인 느낌을 가지게 만든다.

이는 재석과 하야코의 윗세대인 기봉과 이라부의 결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둘은 거의 똑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문제는 도굴과정에서 자식을 잃은 부분이나 초조대장경을 얻으려는 이유가 흡사한데, 마지막까지 유사하다보니 왜 둘을 굳이 나눠놨을까라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물론 작가는 이야기의 흥미를 위해서 한일 양국의 최고 도굴꾼들이 초조재당경을 추적한다라는 설정을 채택했을 테고, 적어도 이야기의 중반부까지 이 부분은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 그러나 결말 부분을 보고 나면 차라리 과감하게 일본 도굴꾼 이야기를 빼고 한국 도굴꾼들의 이야기만 다루는게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계속해서 결말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흥미로운 초반부와 중반부에 비해 확실히 결말부는 문제점이 많았다. 

위에 언급한대로 등장인물들의 마지막 장면에도 문제가 많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도저도 아닌 마무리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주인공 재석을 살펴보자면 원래 그의 목적 자체가 좋은 물건을 구해 아버지를 감옥에서 꺼내는 것인지라 처음부터 초조대장경에 딱히 어떠한 감정이 잇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초조대장경을 추적하는 과정에 그는 이 물건을 지키기 위한 선조들의 노력에 듣게 되고 어느 정도 감화되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렇다면 적어도 결말 부분에서는 초조대장경에 대한 그의 갈등 정도가 부각이 되었어야 하는데 어찌된 것인지 마지막에 그는 그저 초조대장경을 훔쳐야할 대상으로만 바라본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주인공의 생각이 어떤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좀처럼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만향에 대한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만향은 오랜 세월 동안 초조대장경을 지켜온 단체이지만 이것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살해하는 등 부정적인 면모도 가지고 있는 집단이다. 또한 만향 내에서도 이제 이것을 일반에게 공개해야한다라는 측과 공개해서는 안 된다라는 측의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지금까지 초조대장경을 지켜온 숭고한 단체 만향이라는 느낌으로 이야기가 끝나버린다.

작중 인물이나 단체에 대해 편중된 시각을 보내지 않으려는 거였는지는 모르겟지만 적어도 이러한 부분은 결말에서 이야기에 대한 흥미를 꺼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만향이 초조대장경을 오래도록 숨겨온 이유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많은 도굴꾼들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었다면, 차라리 공개하여 대놓고 보호를 받는게 괜찮은 것 아니었을까? 그리고 어찌되었든 현 시대에서 조상들의 유산은 전국민의 것인데 언젠가 다가올 불교의 세상을 그리며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는게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았다.
 
또한, 무엇보다도 납득이 가지 않았던 건 초조대장경을 바라보는 인물들의 시선이다. 이 작품에서 초조대장경은 단순히 고려의 목판인쇄술이 어느 정도의 수준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천년 간 전해져 온 영험한 유물로 다뤄지는데 이게 판타지 쪽에 가까운 작품이라면 모를까, 엄연히 '교양 문화 추리 도서'를 표방하고 있는 책인데도 이런 식으로 다뤄지니 이상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분명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현실에서 놀고 있는데 정작 중요한 소재는 환상을 거닐고 있는 기분인지라.

솔직히 이 책을 볼 때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본 건 아니었다. 전작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을 어느 정도 재미있게 읽었기에 이 책 역시도 어느 정도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에 읽은 거였고 적어도 재미라는 부분에서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후반부에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 전개나 이해가 가지 않는 설정 등은 아무래도 이 책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없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