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2009) - 어른이 되어버린 친구들

 

졸업
8점

  가가 교치이로가 등장하는 가가 형사 시리즈는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와 함께 히가시노 게이고를 대표하는 추리소설 시리즈다. 국내에서는 ‘용의자x의 헌신‘의 영향으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가 좀 더 유명세를 타고 있긴 하지만, 먼저 쓰여진 건,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가로 데뷔한 이듬해인 1986년에 발표한 ‘졸업-설월화 살인 게임‘에서부터 시작된 가가 형사 시리즈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졸업을 발표할 당시만 하더라도 신인작가였던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을 시리즈화 시킬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단 주인공인 가가는 추리보다는 검도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대학생인데다가, 애초에 이런 쪽으로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는다. 물론 이성적인 사고나 진실에 대한 집요함 등 탐정으로서 갖춰야할 미덕이 드러나기도 하고 장래에 경찰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다른 탐정들에 비해서는 이런 부분들이 약하게 드러나는 게 사실이다.

 

  사건 트릭의 경우 초기작이라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조금 난잡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에서는 총 두번의 사건이 벌어지는데, 첫번째 트릭은 다소 당황스럽다는 느낌이 들었고, 두번째 트릭의 경우에는 너무 복잡해서 명쾌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사건이 해결될 때 전해져오는 일종의 짜릿함 때문인데, 이 작품의 경우에는 이런 느낌이 덜했다. 작가 자신도 이를 인지했는지 그림까지 추가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긴 하지만, 이 작품의 트릭은 확실히 복잡하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다만, 두번째 트릭의 경우에는 다도라는 보통의 한국 사람이 접하기 힘든 소재를 사용했기 때문에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감이 있긴 했다.

 

  사실 추리소설에서 사건 트릭이 만족스럽지 못했을 때, 보통의 독자는 실망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나 추리소설의 형식 안에 숨겨진 이 작품의 진정한 메시지는 독자에게 다른 의미에서의 만족감을 안겨준다.

 

  몇 가지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서 살인까지 이어지게 되지만, 결국 이 작품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친구들이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순수하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들은 친구였지만, 친구들은 졸업을 앞두고 현실의 벽과 마주하게 된다. 졸업 후 자신의 진로 때문에 친구들은 서로를 배신하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시작한다. 주인공인 가가와 연인인 사토코를 제외하면 친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고, 드러나지 않았던 배신감은 살인이란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남은 친구들은 친구의 죽음을 묻어두고 관계를 유지하려하지만, 가가는 '긴 시간을 들여 언젠가는 무너져버릴 나무토막을 쌓아온 것이라면 그것을 무너뜨렸을 때 비로소 우리가 건너온 한 시대를 완성시킬 수 있으리라'라는 생각으로 마침내 진실을 밝히게 된다. 그리고 그 나무토막이 무너진 후, 친구들은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잠깐씩 보여지는 친구들의 뒷모습은 서글프다.

 

  결국 졸업은 추리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어른이 되어버린 친구들의 갈등과 그로 인한 슬픔을 담아낸 일종의 청춘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졸업은 추리소설로서는 다소 취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친구들 간의 갈등을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올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했다. 출간된 지 20년이 넘은 이 작품이 단순히 가가 형사 시리즈의 첫 작품이라는 것을 떠나 아직까지도 사랑을 받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