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검전기(2002) - 무협 편을 받쳐주지 못한 판타지 편

  무협과 판타지를 오가며 강력한 무력을 얻은 주인공이 전쟁에서 활약한다는 양판소의 줄거리는 묵향의 초대형히트 이후 한국 장르문학 시장의 주류 스토리가 되었다. 이러한 스토리를 가진 대다수의 작품들의 질이 그다지 좋은 편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 장르문학 시장을 망친 원흉 중 하나로 지목되긴 하지만, 이러한 스토리를 가진 작품들이 워낙에 많이 쏟아져나왔기에, 그 중에서는 나름대로 괜찮은 평을 받은 작품들도 존재한다. 방수윤 작가의 용검전기는 그 몇 안되는 작품에 포함되는 작품이다.

 

  사실 용검전기의 스토리 역시 전형적인 양판소의 줄거리를 피해가지 못했다. 멸망한 제국의 황태자가 우연히 드래곤 하트의 힘을 얻게 되고, 또 우연히 무협세계로 건너가 강한 무력을 손에 넣게 되고, 이후 판타지 세계로 돌아가 멸망한 제국을 재건한다는 내용은 지난 10여년 동안 너무나도 많이 보아온 이야기다.

 

  용검전기가 다른 작품들과의 차별화를 꾀한 부분은 전체 스토리가 아니라 정의로운 주인공이 정도를 걸으며 한단계씩 성장해가는 모습과 짜임새 있는 세밀한 내용 전개다.

 

  대게 한국 양산형 판타지의 주인공은 선하고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주변에서 항상 떠받들어주거나, 성격이 개차반이라 이야기 내내 깽판을 치고 다니는 두 가지의 경우로 나뉜다. 이 중 용검전기의 주인공 용일의 전자에 가까운 주인공이다. 그런데 보통 이런 유형의 주인공은 독자에게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하는데, 작중의 인물들이 밑도끝도없이 주인공을 띄워주기 때문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주인공이 그렇게 대단한 업적을 세운 것 같지도 않은데, 작중의 인물들은 주인공의 대사 하나하나에 눈물을 흘리고, 주군이라 외치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손발이 오그라들 수밖에 없다.

 

  용일 역시 이러한 주인공이기에 작중 인물들은 용일을 시종일관 떠받들고 칭송한다. 그러나 용일에게는 다른 작품들과 차별점이 있었으니, 용일이 다른 이들에게 존중받을 만한 에피소드가 짜임새 있게 전개되어 작중의 인물들이 그를 떠받드는 모습이 거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주인공 용일은 기본적으로 심지가 곧고 정의로운 인물이다. 그렇기에 용일은 다소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매사에 정도를 추구한다. 이런 인물이 온갖 시련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서 마침내 무협 세계의 일인자의 자리에 오르는 모습은 전형적일지라도 감동적이다.

 

  그리고 단순히 무력의 우위를 가리는 결투가 아니라 작중의 인물들이 치열하게 두뇌싸움을 하며 생사를 걸고 싸워나가는 내용 전개는 상당한 몰입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용검전기의 악역들은 대다수의 양산형들과는 달리 찌질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비록 악역일 지라도 저마다의 정의가 있는데, 이 모습은 비록 독자의 공감은 불러일으키지 못할 지라도, 3류 악역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게 한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 많은 장르문학 팬들은 용검전기의 1부인 무협편을 수작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본 전개가 시작되는 2부 판타지 편은 1부에 비하면 여러모로 아쉬운 모습을 보인다.

 

  용일의 목표는 1권에서부터 레르넨과 재회하고, 제국을 멸망시킨 드래곤들에게 복수한 후 제국을 재건하는 것이었기에, 용검전기의 본편은 판타지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판타지편의 줄거리는 무협편과 유사했다. 세부과정은 다를지라도 전체적인 스토리는 주인공이 맨손으로 시작해 일인자의 자리에 오른다는 점에서 판타지편은 무협편과 유사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고, 자칫 잘못하면 판타지편은 무협편의 복제에 그칠 우려가 있었다.

 

  그렇기에 방수윤 작가는 판타지 편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무협편이 일대일 혹은 일 대 다수가 개인의 무력을 바탕으로 싸우는 내용이었다면, 판타지 편은 전략전술을 이용하여 각 국의 군사가 맞붙는 중세 전쟁물이 되었다. 그렇기에 판타지 편은 용일이 개인의 무력을 이용하여 싸우는 장면보다는 대규모의 군사가 싸우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방수윤 작가는 여기서 특이하게도 중세 전쟁물에 삼국지를 덧씌운다. 무협 세계의 생리에 익숙한 용일과 아방개를 내세워 삼국지의 흉내를 낸 것인데, 이는 다른 양산형 판타지들과는 차별화되는 용검전기 판타지 편만의 독특한 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안 그래도 다룰 이야기가 많은데, 작가 자신이 전쟁 이야기를 써내려가는데 너무 심취해버린 것이다. 초반부까지만 하더라도 제국을 재건하겠다는 용일의 목표를 위해서 전쟁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이야기는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묵묵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용일의 왕국이 어느 정도 안전궤도에 오르자 이야기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용일이 중심이 되는 드래곤에 대한 복수를 다룬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아방개를 중심으로 한 아즈난 국의 전쟁과정이다.

 

  이 두 가지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균형감각을 가지고 내용 전개가 되었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문제는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다. 작가 자신이 전쟁 쪽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에 힘을 기울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주축인 아방개의 비중이 높아졌다. 점차 아방개는 주인공에 가까워졌고 그에 따라 그와 관련된 서브 스토리가 많아졌다. 그리고 이 서브 스토리로 인해 아방개의 캐릭터는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분명 무협편만 하더라도 꾀많은 재사형의 인물이었던 아방개는 이 지점에서 싸움도 잘하고, 머리도 좋고, 우직하기까지 한 멋진 남자로 변한다. 코믹한 캐릭터에 가까웠던 아방개가 판타지 편에 들어와서는 초한지의 한신과 같은 인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이야기 후반부에 용일은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을 때가 많아서, 이야기 후반부의 주인공은 아방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방개의 비중이 높아지고, 용일의 비중이 떨어지니 오히려 용일이 드래곤과 싸우는 이야기가 서브 스토리가 되어버렸다. 더군다나 독자들에게 가장 기대되었던 드래곤과의 전투과정이 용일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난 데다가, 그 과정도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가득 차 맥이 풀려버렸다.

 

  그렇다고 전쟁과정이 재미있었는가하면 그것도 아니다. 숨가쁘게 진행되던 전쟁은 어느 순간 고착상태에 빠져버렸고, 그 순간 이야기도 고착상태에 빠져들었다. 용검전기 판타지 편의 중후반부는 굳이 없었어도 될 서브 스토리의 향연이었다. 물론 이러한 서브 스토리들은 각각의 캐릭터들의 개성을 한층 강화시켜주었고, 아방개 외에도 제닝거 후작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만들어냈지만, 이야기의 중심축이 흐트러져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한 마디로 용검전기 판타지 편의 중후반부는 무협편과 같은 재미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후반부에 작품에서 다뤄야 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아지다보니 무협편과는 달리 용일을 떠받드는 분위기마저 문제가 되었다. 물론 무협편에서도 지나치게 용일을 띄워주긴 했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각 인물이 용일을 존경하는 이유가 타당했다. 그러나 판타지편은 다뤄야할 이야기가 많아지다보니 몇몇 인물만 중점적으로 다뤄지고 나머지 인물들을 소외되었다. 그러다보니 용일을 존경할만한 당위성이 형성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독자들은 등장인물들이 용일을 아끼고 존경하는데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걸 잘 드러내는게 무협편의 환사 육선길과 판타지편의 드래곤 로드다. 두 인물은 막강한 능력의 소유자로 용일의 성품에 반해 용일의 조력자가 된다. 그러나 육선길의 경우 처음에는 용일에게 호기심 정도만 가지다가 대붕의 존재로 그와 가까이 지내면서 점차 용일을 진심으로 아끼게 되는 과정이 잘 드러난 반면, 드래곤 로드의 경우 용일을 아낄 만한 계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용일을 무척이나 아끼고 그를 돕게 된다. 처음 용일을 만났을 때, 그저 당돌한 인간이라고 호기심 정도를 느끼던 로드가 인간으로 폴리모프를 하면서까지 용일을 돕는 과정 자체가 개연성이 없었는데, 항상 로드의 뜻을 따르지 않던 용일을 끝에 가서는 마치 아들처럼 대하게 되니 독자 입장에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결국 용검전기 판타지 편의 가장 큰 문제는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를 다루려고 했다는 점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새로운 이야기들이 덧붙다보니 중후반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반드시 다뤄져야 할 이야기가 소홀하게 다뤄지고 서브 스토리에 치중하는 결과를 낳았다. 방수윤 작가 나름대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욕심을 부린 것일 테지만, 이 모든 이야기를 소화하기에는 작가의 역량이 부족했다.

 

  무협편과 판타지편을 통틀어서 봤을 때, 용검전기는 분명 괜찮은 작품이다. 묵묵하게 정도를 향해 걸어가는 주인공의 모습과 진중한 분위기, 치열하게 펼쳐지는 두뇌싸움 등은 용검전기라는 작품을 다채롭게 꾸며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들이 잘 어우러진 무협편과는 달리 판타지 편은 이야기의 과다로 군더더기가 많이 붙었고, 결국 이러한 장점들이 퇴색되었다.

  • Crawder 2012.08.19 21:31 ADDR 수정/삭제 답글

    제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용일이 작중인물들에게 떠받듬을 받는 이유가 타당하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 생각에 반대합니다. 제가 보기엔 주인공을 살리기 위해 조금의 억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점은 판타지 소설의 재미를 살리기 위해 부득히하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리고 제가 용검전기 판타지편을 보며 어이없었던 부분은, 처음 수비대의 부대장으로서 그리 강해보이지도 않고, 평범하고 정직하게만 보이던 트래퍼가(참모장에 쩔쩔 매는 모습이나 등등 전체적으로), 급한 스토리 전개를 위해 강력한 조력자가 급히 필요해지자, 갑자기 오넬의 맹호라고 떠받들여지며, 분명 부대장이었던 그의 직위가 어느새 대장이었던 것으로 바껴서 나온다는 겁니다(작가가 그가 부대장이였던 것을 까먹은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다 드웰린이었나? 그 그의 정체(드래곤 로드)도 처음엔 그로 계획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생각을 바꾼 것처럼 갑작스러웠습니다. 과거 10대 음유시인이었다는 것은 그의 유희가 오래된 것이라는 것을 반증하고, 예언을 잘못해 별볼일 없는 음유시인으로 전락했다는 그의 과거는 그가 드래곤 로드였다는 것을 심히 어색하게 만듭니다. 거기다가 음유시인이 그를 따르게 된것도 우연에 우연히 겹쳐보인 것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방개와 트래퍼가 처음 왕국에서 중용되었을 때 첩자의 의심을 거의 받지않은 것도 어이가 없구요. 그리고 무협편에서는 나중에 무언가 역할을 할 듯 보였던 배화교 소공주가 나중엔 거의 잊혀지듯 하는 것도 좀 이상했습니다. 거기다가 그 소공주의 갑작스런 개과천선의 이유도 어이없었습니다.제가보기엔 그 작가의 장점은 오히려 그 때 그 때의 적절한 비유와 표현인 것 같습니다.

    • 성외래객 2012.08.20 06:20 신고 수정/삭제

      무협 편에서 주변 인물들이 용일을 떠받드는게 타당성이 있다고 한 건, 이 정도의 스토리면 그래도 용일을 존경할만하겠구나 정도의 생각은 만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인공을 떠받드는게 꽤나 오글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타당한 스토리라인을 제시해주었다는 것이죠.

      드웨인의 경우에는 저도 본문는 살짝 언급하고 지나갔지만, 상당히 억지스러웠던 반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에는 별개의 인물이었던 것 같은데, 이야기를 진행하다보니 합쳐진 것 같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드웨인이 드래곤 로드였다면, 드웨인의 시각으로 용일을 묘사한 건, 일종의 서술트릭이 되는데 이게 추리소설도 아닌데 일부러 그러진 않았겠죠;;

      트래퍼는 본문에서 언급한대로 아방개와 비슷한 케이스로 보입니다. 판타지 편은 전쟁이 강조되는 이야기로 아무래도 부하장수들의 무용을 어느 정도 그려낼 수 밖에 없기에, 처음 그저그런 캐릭터였던 트래퍼를 어느 정도 띄워줄 수 밖에 없었겠죠; 문제는 그 과정이 좀 억지스러웠다나는 거지만;;

      배화교의 소공주는 개인적으로 드래곤의 침입을 알려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전반적으로 무협편의 마무리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용일이 도달해야하는 경지, 본래 세계로의 귀환, 마교의 내전 및 정파와의 싸움, 그리고 드래곤과의 싸움 등 너무 많은 이야기가 한 번에 나오면서 마지막 전개가 다소 급했던 것 같습니다.

  • 권성천황 2012.10.14 02:00 ADDR 수정/삭제 답글

    블레이드헌터 보려다가 감상문 쓰신것보고 마음 접었네요,조리있게 제가 원하던
    내용이었습니다.용검전기는 판타지편에
    드웨인이 로드라는걸 용일이 알게된거 보고 있는데(옛날에다봣던거) 주인장분께서
    쓴 감상문보고 통하는얘기가 많네요 ㅋㅋ
    단순무력으로 승부하는것 말고
    치밀한 두뇌싸움(지략대결이던지) 뭐 이런
    소설 없을까요?추천좀 부탁드립니다.
    용검전기무협편,하얀늑대들 두개가
    기억에 남고,무협소설안에 술법을 주제로
    하는것도 재미있더군요,질주강호 같은..
    수담/옥 작가분은 그만두신걸까..-0-
    감상문 잘 읽고갑니당
    추천해주신거 확인하러 나중에 들릴게요

    • 성외래객 2012.10.14 23:05 신고 수정/삭제

      공감이 가셨다니 기쁩니다ㅎㅎ

      두뇌싸움을 다룬 작품이라면 앙신의 강림, 여왕의 창기병, 군림천하 정도가 생각나는군요. 사실 이 작품들도 두뇌싸움을 중점적으로 다룬 작품이라기보다는 이러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작품들이죠;

      장르문학 외의 작품도 괜찮으시다면 강풀의 미심썰 시리즈, 데스노트, 20세기 소년, 몬스터, 슬레이어즈(소설)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ㅎ

  • 새누 2013.03.04 06:28 ADDR 수정/삭제 답글

    그래도 괜찮은 작품이죠. 단점이 있지만 볼만한 작품.

    그런데 용검전기 이후 방수윤작가님의 다른 작품은 그다지;;

    거기다 제가 하렘을 좋아하는 편이라 더 그런것 같네요
    용검전기에서도 결국 무협편 히로인과는 잘안되죠

    • 성외래객 2013.03.04 16:15 신고 수정/삭제

      판타지 편의 전개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 양산형 판타지 중에서는 수작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후 작품 평이 그리 좋지 않은 터라 저 역시 쉽게 손이 가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