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10점

그야말로 바른 생활 청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박카스의 광고는 과연 정당한 것일까? 

박카스에 나오는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은 군대에 꼭 가고 싶어하며, 지금 다리가 아프더라도 노약자석에는 절대 앉지 않고, 야근을 하게 되더라도 회사는 내가 지키겠다며 언제나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태도로 삶에 임하고 있다. 

그런데 이 광고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걸까? 정말로 우리 주변의 젊은이들은 이렇게 반듯하고 열정적이기만 한 걸까? 오히려 박카스 광고는 가장 모범적인 청년의 모습을 만들고 그 틀에 젊은이들을 끼워 맞추려하는 건 아닐까?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는 이러한 의문을 바탕으로 이 시대가 말하는 열정과 그로 인해 파생된 열정노동의 현상을 파헤치고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어느 순간부터 한 가지 의문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었다. 과연 열정만 가지고 있다면 어떤 곳에서 일하든 남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지금 삶이 비참하고 남루해도 긍정적인 미래를 꿈꾼다면 그것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힘들어 죽겠는데, 이게 밝은 미래와 대치가 가능한 건가?

요즘은 지인들과 가끔 술을 마시게 되더라도 예전처럼 즐겁지가 않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까지는 그저 즐거웠던 술자리가 이제는 서로의 고통을 호소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즐겁게 시작했던 술자리도 어느 순간 분위기가 침착해지며, 종국에는 지금의 현실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몸을 망쳐가며 노는데 열중하게 된다. 

이게 어른이 된 증거라면 그건 좀 비참한게 아닐까? 이런 미래를 안겨주려 우리의 부모가 자신을 희생해서 자식들을 대학에 보낸 건 아닐 거다.  

아마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이들 중 대다수가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상상 이상의 스트레스에 신음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청소년 시절부터 들어왔던 청년실업의 이야기는 시간이 흘러도 해결이 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한 현실은 이제 눈 앞으로 다가왔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어떤 이는 토익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준비한다.

그러나 마음 속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연 내가 일자리를 구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이렇듯 강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이 사회는 열정을 가지라 말한다. 네가 열정만 가지면 언젠가는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인 명성도 얻을 수 있다고 속삭인다. 하지만 그 속삭임 뒤에는 한 가지 협박이 따라붙는다. 만약 실패한다면 그건 열정이 부족한 네 탓이야.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지만, 자신의 원하던 일을 하는 청년들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지만 삶을 꾸려나가기에 일은 힘들기만 하고 돈은 모이지가 않는다. 이들을 향해 사회는 말한다. 네가 하고 싶은 일 하는데, 이 정도는 감당해야하지 않아?

그리고 우리의 사회는 이 두 가지 협박과 더불어 한 가지 미션을 내린다. 단순한 노동자가 되는 건, 실패한 삶을 산 거라고. 그렇기에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자들끼리도 서로를 사장님이라 부른다.

이 책을 보는 내내 답답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어렴풋이 알고만 있던 연예계와 영화계, 그리고 프로게이머 시장이 상황은 생각 이상으로 열악했으며, 그 안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이들의 삶은 그야말로 비참했다.

사회적 안전망은 전혀 갖춰놓지 않은 채, 청년들의 열정을 착취하고, 살아남지 못하는 자는 버려지는 이 사회의 청년 자살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더 안 좋은 건, 대한민국이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사회에 가장 근접하게 다가간 사회일 지도 모른다는 것. 그렇기에 다른 국가들의 미래가 대한민국에 나타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은 마지막까지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 그저 이 책에서 말할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당한다면, 무한한 반복 속에 언젠가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일말의 희망 뿐이다.

이 책은 분명 그동안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독특한 시각으로 사회를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그러나 자신들부터가 이 사회의 희망고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어설픈 희망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섣부른 사회개혁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사회를 분석하고 비판할 뿐이다.

어떤 이들은 이를 대안의 부재라 지적할지도 모르지만, 이 책에서 비판하고 있는 의식들은 이미 대다수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어버렸다. 안타깝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지금의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일 것이다. 정말로 슬프지만 말이다.


p.s
이 책은 열정이 어떻게 착취되는지 보여주기 위하여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홍정훈 작가의 넥스비전 미디어윅스의 사례도 수록되어 있어서 조금 놀랐다. 짧막하긴 했지만, 이런 분야의 책들 가운데 장르문학을 다뤄준 책이 있었던가? 그와 더불어 한국의 오타쿠 문화에 대해서도 본문에서 집고 넘어가고 있는데, 그들이 정치적 소비를 하고 있다는 부분에 무척이나 공감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