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창기병

                              
                                 여왕의 창기병 1
                               10점
현재 청어람 출판사는 장르문학 계의 대표적인 출판사 중 한 곳이지만 처음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딱히 명작도 없고, 딱히 망작도 없는 그저 그런 출판사라는 인식이 강했었다.물론 이곳에는 아린이야기가 있지만

그러나 청어람의 초창기, 비록 판매량은 조금 떨어졌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은 두 개의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엘야시온 스토리와 여왕의 창기병이다.

엘야시온 스토리에 대한 글은 지난 번에 쓴 적이 있으니 넘어가고 여왕의 창기병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자면 이 책이 나올 당시는 한국 장르문학 계의 전성기이자 과도기였다.

이 시기 쯤이 대한민국 대여점이 가장 많았을 시기였으며 그로 인해 쏟아져 나온 작품의 숫자도 가장 많았다. 또한 지금이야 장르문학 사이트라고 하면 커그나 문피아 정도가 언급되지만 이 때만 하더라도 라니안, 삼룡넷과 같은 거대한 커뮤니티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만큼이나 수준 이하의 작품들이 많이 나오던 때도 바로 이 시기였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간혹가다 괜찮은 작품들이 나오곤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여왕의 창기병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는 흔히 말하는 '소드 마스터'물이 한창 대세였던 시기인데 이 작품은 시류에 정확하게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곳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대게 이 작품의 세계관에서는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인물들이지만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한계 내에서 전투를 진행하게 된다. 또한, 작가 자신이 소드 마스터를 까려고 마음 먹었는지 작중에서 소드 마스터라 불리는 인물이 화살세례에 죽었다는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 작품에는 마법이 있긴 하지만 그야말로 극초반에만 잠깐 등장할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보면서 판타지 소설 같다는 느낌보다는 가상 역사소설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또, 설정 역시 무척이나 세세한 편인데 각 권의 뒤에 부록 형식으로 이 작품에 대한 설정이 달려있는데 지금까지 나름대로 많은 장르문학을 보았지만 각 나라를 상징하는 깃발까지 그려놓은 설정집은 정말 처음 봤다;

내용 전개 역시 탄탄한 편이다. 적절한 떡밥투척과 회수,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들, 그리고 무엇보다 국산 장르문학 베스트에 꼽힐 만한 전쟁씬에 대한 묘사.

개인적으로 국내에서 이 정도의 전쟁씬을 보여줄 수 있는 장르문학 작가는 이영도와 권병수 작가 밖에 못 봤다. 물론 전쟁묘사를 잘 그려내는 작가들은 많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관점에서 이 두 작가를 최고로 꼽는다는 이야기다. 그야말로 잔혹하면서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그리고 무척이나 재밌게 전쟁씬을 그려나간다.
 
전쟁묘사가 세밀한 작품답게 궁중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암투 역시 꽤나 흥미진진하다. 단순히 A와 B가 치고박는 식의 정치적 암투가 아니라 암살을 하면 그 계획은 어떻게 짰고, 향후 이 일이 미칠 여파는 어떻게 되는 등 전쟁씬 못지 않게 그야말로 세밀한 정치적 암투를 보여준다.

또, 하 이언, 파일런, 레미, 튜멜, 쇼 등 개성만점의 인물들도 많이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초반에는 하 이언이나 파일런 같은 인물이 좋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튜멜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야기 초반부에는 독자의 혈압을 오르게하는 전형적인 찌질하고 자만심에 가득 찬 하급 귀족 나부랭이였으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내면적으로 성장하여 후반부로 가면 과연 이 인간이 초반에 나오던 그 인간이 맞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왕의 창기병은 조금 안타까운 부분들이 존재한다. 우선 첫번째로 꼽을 수 있는 건 작가 특유의 지나치게 세밀한 묘사방법이다. 작가의 세밀한 묘사법은 전쟁씬이나 궁중 암투를 그려낼 때는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10권 내내 이런 식의 묘사를 사용하니 가끔은 내용이 꽤나 지루하게 전개된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특히 개인적으로 1~2권 사이가 무척이나 지루하게 느껴졌다. 딱히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전개가 무척이나 느렸다. 원래대로라면 1권만 보고 지루하다 싶어 접어야했겠지만 당시에 1~2권을 가지고 시골에 갔던 지라 겸사겸사 2권도 읽게 되었는데 2권 후반부에 어떤 성을 탈출하는 장면부터가 너무 재밌어서 계속해서 읽어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읽어나가면서 중간에 포기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하진 했지만 확실히 1~2권의 전개는 여왕의 창기병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읽기에는 지루한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책을 읽고나서 이거 정말 대박이라며 친구들한테 추천도 많이 했는데 딱 한명 빼고는 모두 1권 읽다 포기했다. 물론 마지막까지 다 읽어낸 친구는 나와 같이 권병수 작가의 열렬한 빠가 되었고;

그러나 무엇보다 아쉬운 건 이 작품이 미완의 작품이 되었다는 점이다. 권병수 작가는 본래 이 이야기를 3부작으로 기획했고 여왕의 창기병은 그 시리즈의 1부격인 작품이었다.

또한, 내용이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시리즈인지라 여왕의 창기병에서는 뿌려만 놓고 회수되지 못한 떡밥이 무척이나 많은 편인데 작가는 아마 이러한 복선들을 다음 작에서 회수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작가가 방대한 설정집을 분실해버렸다(...)

중학교 때부터 기획해온 설정들이라고 하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분실해버렸다고 한다. 따라서 이대로 끝;;

작가 역시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강한 편이긴 한데 워낙에 설정집이 방대한 작품이라 그런지 도저히 다시 쓸 방법이 없었나보다;;

사실 여왕의 창기병 자체로도 어느 정도 이야기의 마무리가 지어지긴 하지만 회수되지 못한 떡밥이 너무 많은 지라ㅠ.ㅠ

이후 작가는 시공사에서 프리텐더스를 내지만 비그리드 관련 글을 쓸 때 말했듯이 시공사가 장르문학 사업 자체를 접어버리는 바람에 이것도 2권으로 끝나버렸다(...) 작가의 말로는 4권 정도로 끝낼 생각이었다고 하던데;

그리고는 한동안 작품을 내지 않다가 마그나카르타2-진홍의 성흔의 스토리에 참여했다고 한다. 진홍의 성흔 홈페이지에 가면 마그나카르타 관련 단편을 볼 수 있는데 그 글이 바로 권병수 작가의 작품이다.

이후 그야말로 오랫동안 침묵하던 권병수 작가는 마침내 2009년 시드노벨에서 트레스패서라는 작품으로 컴백하지만 2010년 4월에 2권이 나온 후 이것도 1년 가까이 안 나오고 있다(...)

블로그에 남긴 글을 보면 새로운 세계관의 글을 준비 중이라고 하던데 그 글이 올라온게 2011년 1월이다;;

결국 2001년에 여왕의 창기병을 내면서 작가생활을 시작한 이래 제대로 된 완결작품은 하나도 없다완결 좀 내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엉엉
  • 나그네 2011.12.26 02:12 ADDR 수정/삭제 답글

    설정집 분실 빵 터지네요 ㄱ-

    • 성외래객 2011.12.26 20:33 신고 수정/삭제

      참 웃기다면 웃기고 어이없다면 어이없는 상황인데 작가 자신도 너무 허탈했다고 하니 참 안타깝고 씁쓸하기도 한 상황이죠;;

      개인적으로 정말 재밌게 봤던 작품이라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무척이나 벙쪘던 기억이 납니다(...)

  • 2013.06.17 15:25 ADDR 수정/삭제 답글

    작가님 블로그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되게 재밌게 봤었는데; 수도방어전 이후로 전쟁묘사가 개쩔었음

    • 성외래객 2013.06.17 17:56 신고 수정/삭제

      권병수 작가의 블로그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wr51.tumblr.com/

      권병수 작가의 경우 블로그를 여러차례 이전하면서 예전 글들이 많이 사라지기도 했고 글이 띄엄띄엄 올라오는 경우도 많았기에 현재 글 자체는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만, 최근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차기작 계획이 있는 모양입니다ㅎ

  • 유동닉 2015.03.05 16:34 ADDR 수정/삭제 답글

    권병수씨는 뭐, 전형적으로 안 풀린 작가죠. 출판 운이 안 따라준 작가라고 해야 하나... 그나마 창기병은 잘 나가다가 막판에 엎어지고, 프리텐더스나 트레스패서는 겨우 시작하고 엎어진 눈치더라고요. 좋은 작가였는데, 참 아깝습니다.

    다만, 오래간만에 창기병을 다시 읽어보니 이게 제 기억만큼 뛰어난 작품은 아니더라고요. 내쉬님 본문에도 지루하다, 지나치게 세밀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거기다 작가가 지나치게 집요하다는 문제도 있어요. 예를 들어, 다큐멘터리 같은 전쟁, 호쾌한 영웅담으로써의 전쟁이 아니라 끔찍하고 질척질척하고 참혹하고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전쟁을 보여주겠다는 건 좋은데... 같은 목적의 장면이 정말 지치지도 않고 반복되죠. 전쟁터의 군대가 얼마나 경직되고 엄격하고 잔인한 조직인지, 전쟁에 휘말린 민간인들이 얼마나 쉽고 끔찍하게 죽어가는지... 같은 목적의 장면이 정말 셀 수도 없이 반복되는 걸 계속 읽다 보면 피로가 느껴지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