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줍는 소년



한국 판타지 초창기 시절,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이 한국 판타지 1세대라고하는 시기.

그 때 민음사 계열의 황금가지라는 회사에서는 드래곤 라자를 출간했고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한국 판타지의 붐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뒤, 자음과모음에서 세월의돌, 가즈나이트, 비상하는매 등의 1세대 작품을 출간했고 한동안 한국 판타지는 황금가지와 자음과모음의 주축이 되어 양질의 작품들을 출간했다.

그러던 중 자음과모음에서 어느순간부터 흔히 말하는 '양판소'를 무분별하게 출간하기 시작했고 황금가지는 판매량은 적더라도 어느 정도 양질의 작품들만을 출간했다.

그리고 현재, 자음과모음은 판타지 쪽 사업을 접어버렸고 황금가지는 이영도 작가를 제외하고는 한국 판타지를 출간하지 않고 있다.

그러던 차에 나온 황금가지의 '양말 줍는 소년.'

일단 그 작품의 재미 등을 떠나서 황금가지에서 나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관심이 갔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들려오는 호평들.

덕분에 학교 도서관에 이 책이 들어왔을 때 망설임 없이 책을 빌려왔고 다 읽은 지금은 전권 구매하려고 생각중이다.

양말 줍는 소년은 뭐랄까.

한국 판타지 소설 중에서는 굉장히 독특한 형태의 작품이다.

세계관은 꽤나 동화적이지만 진행되는 이야기는 또 현실적이다.

어느날 갑자기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그 이후 엄마를 따라 환상의 나라로 가게된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 앞에서 펼쳐지는 것들은 정말로 동화적이다.

동물들이 말을 하고 청소를 자주 안 하면 풀이 자라나고 낡은 양말들로 장난감 병정을 만들고 쓰레기를 너무 많이 넣으면 쓰레기통이 체하고, 마법을 펼칠 수 있으며, 벽을 통해 다른 곳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 기억을 저장하는 발전소가 있고 거울을 통해 책이나 영상을 보는 등 동화의 느낌을 주는 소설이 바로 양말 줍는 소년이다.

그렇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진행되는 이야기는 현실적이다.

주인공은 고등학생이지만 담배를 펴본 적도 있고 술도 마셔본 적이 있고 환상의 나라에 온 후, 여러가지 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려서 목숨에 위협도 수차례 받는다. 또 환상의 나라는 분리주의자와 반분리주의자들의 이념대립을 하고 있으며 바깥세계-현실세계-에 있는 안 좋은 부분들 역시 존재한다.

양말 줍는 소년을 읽으면서 감탄한게 바로 동화풍의 세계관과 현실적인 이야기를 잘 버무려서 꽤나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점이다.

양말 줍는 소년에서는 환상적인 장면들 뒤에 바로 폭력이나 정치적인 싸움 등이 등장하지만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도로 이야기 전개가 매끄럽다.

또, 보통 세계관이 나름대로 독특한 경우 그 세계관에 대한 설정들은 독자에게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다가 설명도 어색하고 진행도 뚝뚝 끊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의 경우 이런 세계관 설정들에 대한 설명 역시 매끄럽다.

읽는 중간에 궁금한 것이 생기면 당장에 설명해주는 경우는 드물지만 어느 순간 독자의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준다. 환상의 나라 십계명을 설명해주는 경우를 예로 들자면, 처음부터 십계명 전체에 대해 설명해주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에피소드 사이에 자연스럽게 십계명과 관련된 이야기를 넣어서 독자의 의문을 해소해준다.

그리고 스토리 역시 꽤나 탄탄할 뿐만 아니라 세계관 설정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이념대립이나 양말을 줍는 일, 그리고 시민권을 따기 위한 노력과 등대지기 선거, 무질서의 습격 등, 설정 자체가 다른 소설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설정을 잘 버무렸고 중간중간 터지는 유머나 해학 들은 그야말로 원츄!

그리고 읽으면서 들은 생각이 한국에서 나오는 판타지 소설이나 최근 한국에서 시작된 라이트노벨의 경우 그 장르를 자주 읽던 사람, 혹은 젊은 층의 사람들의 경우 특별한 문제없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지만 중년층의 경우 솔직히 말해 읽는데 무리가 갔던 게 사실이다.

일단 중년층이신 분들은 한국 판타지의 주 세계관인 '중세를 바탕으로 마법이나 몬스터가 나오는 세계관'도 낯설다.

실제로 우리 엄마의 경우도 퇴마록이나 룬의 아이들 같은 경우는 어떻게 재밌게 읽으셨지만 드래곤 라자의 경우 1권만 읽으시고는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먹겠다고 하시더라;;;

또 라이트노벨 같은 경우도 세계관이 낯설고 중년층들의 입장에서 캐릭터성이 강조되는 소설은 조금 당혹스러울 거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양말 줍는 소년의 경우 가끔가다 나오는 주인공의 욕설을 제외하고는 중년층 역시 무리없이 소화가 가능한 소설이 아닐까 싶다.

그 뭐랄까. 어린왕자나 해리포터 같은 경우도 전 세대가 별다른 무리없이 읽고 있지 않은가? 양말 줍는 소년의 경우도 너무 매니아틱한 세계관도 아닐 뿐더러, 평소 장르문학을 읽지 않는 사람도 무리없이 읽을 만한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기에 중년층에게도 충분히 통할 거라 생각된다.

어쨌거나...최근작들 중에서는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고 한국 판타지 소설에서도 이런 작품이 나오는구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는 소설이기도 했다.

p.s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이 폐인의 모습을 한 등대ㅡ.ㅡ;
     또 등대와 주인공 아빠 채팅 도중 아빠가 한 말.
     "나 과장이 불러서 잠깐만."
     ...이거 묘한데서 현실적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