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센 뤼팽 전집 2권 - 뤼팽 대 홈스의 대결

                    
                      뤼팽 대 홈스의 대결
                     4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 셜록 홈즈의 라이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누구를 꼽을까?

적어도 한국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은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일 것이다. 물론 뤼팽의 인지도가 한국보다 떨어지는 국가들에서는 이 괴도신사가 언급조차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자신이 신실한 셜로키언이라면 이 말에 격분할 것이다.

사실 셜록 홈즈의 원작에서 등장하는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모리어티 교수다. 실제로 작중에 등장하는 범인들 중 홈즈를 긴장하게 만든 존재는 모리어티 교수가 거의 유일하다. 

그러나 셜록 홈즈 원작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홈즈의 라이벌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존재는 모든 괴도의 시초격인 뤼팽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어디까지나 뤼팽의 인지도가 높은 국가에 한정한다면 말이다.

그렇기에 아르센 뤼팽 전집의 2권은 뤼팽과 홈즈의 대결이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본래 각 분야의 가장 유명한 인물들의 대결은 세간의 시선을 받기 마련이다.  

이미 뤼팽 1권에서 둘은 간접적으로 대결을 치른 바 있었고, 그렇기에 이미 뤼팽 1권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2권에 대한 기대는 제목만으로도 한층 높아졌을 것이다.

이 책에서 홈즈와 뤼팽은 총 두번의 대결을 치른다. 금발의 귀부인 사건과 유대식 램프 사건에서 이 둘은 치열한 승부를 벌이게 되는데, 솔직히 추리소설로서의 면모를 기대하고 봤다면 이 둘의 대결을 다소 실망스럽다.

전권에서 정통 추리소설과 비교했을 때, 추리에서 다소 약한 측면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활극의 요소를 도입해 독특한 맛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권은 홈즈와 뤼팽의 대결이라는 측면에 너무 초점을 둬서 그런지 추리라는 측면이 너무 죽어버렸다.

실제로 금발의 귀부인, 유대식 램프 이 두 사건은 비밀통로나 우연적인 요소 등에 치우친 나머지 추리 소설 특유의 '범인은 누구일까?'라는 느낌의 호기심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물론 뤼팽 시리즈답게 기본적인 재미는 보여주지만 이런 모습은 다소 실망스럽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이를 넘어서는 가장 중대한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홈즈라는 캐릭터의 무단 도용이다.

현재에 와서 코난vs김전일, 슬레이어즈vs오펜 등의 크로스오버 격인 작품을 낼 때는 각각의 캐릭터의 성격을 제대로 구현하고 너무 한 쪽으로 대결의 향방이 쏠리지 않도록 노력하기 마련이지만, 이 책은 코난 도일의 참여 없이 오로지 모리스 르블랑 혼자서 써낸 작품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모리스 르블랑은 이 작품에서 두 캐릭터의 동등한 대결을 구현해내기보다는 메리 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메리 수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자신이 만든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을 불러들여 농락하는게 메리 수다.

홈즈는 이 작품에서 철저하게 망가진다. 물론 모리스 르블랑도 이 점은 인식해서인지 결과만 놓고본다면 두 개의 사건에서 홈즈랑 뤼팽은 무승부를 기록한다. 두 개의 사건에서 홈즈는 사건을 해결하고 뤼팽을 위기 상황으로 몰고가며, 뤼팽 역시 홈즈 만이 유일한 자신의 호적수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작품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홈즈가 열세인 느낌이다. 첫번째 사건에서도 우연이 겹치지 않았다면 홈즈는 사건을 해결할 수 없었고, 두번째 사건에서도 뤼팽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홈즈는 사건을 해결할 수 없었다. 이 작품에서 홈즈는 우연이나 조력이 아니고서는 뤼팽을 상대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첫번째 사건에서는 사건 해결 중에 뤼팽에게 당해 원작의 홈즈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굴욕을 겪기도 한다.

적어도 여기까지였다면 작가가 그래도 나름대로 둘의 대결을 비등비등하게 이끌고갔지만 그래도 뤼팽의 편을 어느 정도 들어주었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 내에 비치는 홈즈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이런 소리는 목구멍으로 쏙 들어가게 된다.

원작에서의 홈즈는 다소 괴팍하고 차가운 면모가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한 면모에 불과했으며, 정도는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홈즈는 추리력은 뛰어나지만 덤벙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괴팍한 노인네 정도로 그려진다.

자신의 친구 왓슨이 부상을 입었음에도 딱히 신경을 쓰지 않으며, 자신의 추리가 빗나갔을 때는 쪼잔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자 엉뚱한 데다가 화풀이를 하기까지 한다. 

더군다나 원작에서의 홈즈는 범인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원작의 에피소드를 보다보면 범인의 사정을 듣고 너그러운 면모도 보여주곤 했지만 이 책에서는 범인에 대해 상대적으로 강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홈즈의 모습은 매너 있고, 여유가 넘치며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뤼팽의 모습과 대조되어 더욱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왓슨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그래도 홈즈의 경우 뤼팽의 호적수로 어느 정도 그려내어주지만 이 작품에서의 왓슨은 정말 눈치라고는 하나도 없는 바보에 불과하다. 여기서 그려지는 왓슨의 모습은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추리를 하기도 하던 원작과는 달리 순수하게 홈즈의 부하 정도에 불과하다. 심하게 말하면 거의 똘마니 수준이다. 그런 데다가 사건 도중 괜히 나섰다가 이런 저런 부상을 입기도 하고 엉뚱한 추리를 해서 홈즈에서 면박을 듣기도 한다.

이 두 사람의 관계도 참 이상하게 그려놓은게, 원작에서도 왓슨의 추리를 보며 홈즈가 면박을 주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이 책에서 홈즈는 왓슨을 거의 답이 없는 종자로 몰아가기 일수다.

이러한 부분 때문에 코난 도일은 이미 전권의 '셜록 홈즈, 한 발 늦다.'가 나왔을 때 편지를 통해 항의를 하기도 했지만 모리스 르블랑은 정식으로 사과를 하기는커녕 셜록의 S를 홈즈에 붙여 이름을 헐록 숌즈로 바꾸는 꼼수를 보여주는데 그쳤다.

이런 식으로 저 위대한 명탐정을 농락하고 있으니 원작을 읽어본 사람으로서는 참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스스로 셜로키언을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울분을 참지 못했으리라.

사실 어렸을 적에, 어린이용으로 나왔던 뤼팽 대 홈즈의 대결을 읽었을 때는 그저 맞대결이라는 측면에 집중해 재밌게 읽었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이도 먹었고, 무엇보다 셜록 홈즈의 정발본을 읽어본 뒤에 이 책을 읽으니 도저히 좋은 평을 써주기가 힘들다.

만약 이 작품에서 뤼팽의 호적수가 홈즈가 아닌 다른 이였다면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긴 하더라도 활극적인 요소들 덕분에 즐거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재밌게 읽었다고 말할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러나 상대는 다름 아닌 홈즈다. 다른 이도 아니다. 지난 100년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으로 이름을 떨쳐 온 셜록 홈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작품의 재미를 떠나서 용납할 수 없는 작품이다.

사실 내게 홈즈와 뤼팽 중 누구를 더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곤란하다. 홈즈와 뤼팽이란 인물들은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참 많은 즐거움을 주었던 주인공들이기에 두 시리즈 중 어떤 걸 더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참 곤란하다. 그래도 단편보다는 장편을 선호했기에 어린 시절에는 홈즈에 비해 장편이 많은 뤼팽을 더 좋아했지만 셜록 홈즈 완역본을 읽은 지금은 이제 그런 부분조차 없어졌다.

그렇기에 모리스 르블랑이 일방적으로 쓴 홈즈와 뤼팽의 대결은 참 씁쓸한 맛을 느끼게 한다. 굳이 이런 식으로 홈즈를 끌어들여서 괜히 아르센 뤼팽의 작품성에 흠집을 남겨야만 했을까?

후발 주자로서의 열등감이었는지, 아니면 프랑스와 영국 사이의 국민 감정이었는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뤼팽 초기에 홈즈를 무단으로 도용하여 망가뜨린 부분은 지금까지도 뤼팽 시리즈의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