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 워(2009) - 사상적 대립을 기반으로 한 히어로들의 내전

  DC 코믹스나 마블 코믹스는 주기적으로 자신들의 인기 히어로들을 활용한 크로스오버 이벤트를 기획해왔다. 이러한 이벤트의 양상은 단순한 히어로들 간의 다툼에서 세계관 리셋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시빌워는 마블코믹스에서 2000년대 중반 발표한 크로스오버 이벤트 중의 하나다.

 

  앞서 언급한대로, DC코믹스나 마블 코믹스는 이러한 크로스오버 이벤트를 주기적으로 열어왔지만, 시빌워는 그 중에서도 유별난 관심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지금까지 대체로 올스타전 차원에 머물렀던 히어로들 간의 다툼과는 달리, 다툼의 기반에 사상적 대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빌워에서 히어로들은 초인등록법을 둘러싸고 찬성 진영과 반대 진영으로 나뉘어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찬성 진영은 능력에 대한 적절한 규제 및 통제를, 반대 진영은 자유와 히어로들의 안전 문제를 내세우며 대립하는데, 시빌워는 이러한 주장들을 토대로, 단순한 선악대립이 아닌 사상적인 대립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간다. 그리고 히어로들 중에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거나, 처음과는 입장을 달리하는 이들도 등장하여, 이러한 대립구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렇듯 시빌워는 파격적인 내용 전개와 서로 다른 사상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구도의 대립을 제시하며 마블 코믹스 역사에 결코 가볍지 않은 발자취를 남겼다. 하지만 시빌워는 한 가지 결점으로 인하여, 기존 팬들의 강한 반발을 부르기도 했는데, 그 결점이란 두 진영에 대한 균형감각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빌워는 얼핏 보면 두 가지 진영을 동등하게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반대 진영 쪽으로 무게 중심이 조금 기울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이언맨을 제외한 마블 코믹스의 인기 히어로들은 대체로 반대 진영을 지지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으며, 작중에서 사태를 극단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건 대부분 찬성 진영이다. 저자는 나름대로 중립적인 방향으로 이야기를 서술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시빌워를 읽은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아이언맨을 빌런 취급할 정도로 이야기의 무게 중심은 반대 진영으로 기울어져 있다.

 

  만약 시빌워가 순수한 창작물이었다면, 이러한 내용진행은 큰 문제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시빌워는 오랜 세월 확립된 마블 코믹스의 단순한 팬픽이 아닌 공식적인 사건으로 기획되었다. 그런데 이런 창작물에서 임의로 진영을 나눈 것까지는 그렇다쳐도 한 쪽 방향으로 치우친 내용전개를 보인 건, 기존 팬들의 심정을 너무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시빌워의 기획 자체는 충분히 흥미로웠으며, 내용 전개나 파격성에서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마블 코믹스의 오랜 역사를 고려할 때,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린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