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2013) - 봉준호, 선로에서 이탈하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일찍부터 올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혀온 작품으로, 기대에 걸맞게 개봉과 동시에 가장 뜨거운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까지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 관객과 평론 모두에게 호평을 받은 것과는 달리, 설국열차는 개봉 직후부터 평이 극단적으로 엇갈렸고, 이 때문인지 무난하게 천만관객을 넘어서리라는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900만 선에서 관객동원이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사실 설국열차의 세계관 자체는 그리 독특한 건 아니다. 세계 멸망 이후 살아남은 인류를 싣고 달리는 열차라는 설정을 가져오긴 했지만, 이야기의 전개방식만 다를 뿐, 멸망 후의 살아남은 인류라던지, 한 공간씩 전진하며 미션을 해결한다는 식의 소재는 이미 여러 매체에서 다뤄졌다.

 

  하지만 기존의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봉준호 감독은 독창적인 세계관을 창조하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소재나 클리셰를 비트는데 재주가 있는 감독이고, 이에 따라 관객들은 봉준호 감독이 과연 멸망 후의 세계를 얼마나 독특한 감각으로 그려낼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설국열차는 기존의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과는 달리 클리셰를 비틀기보다는 전반적으로 클리셰에 입각하여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간다. 뭔가 반전이 있겠지라는 관객들이 기대와는 달리 설국열차는 처음부터 관객의 예상치 안에서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물론 중간중간 양갱을 연상시키는 특정 식품(?)과 같이 봉준호 특유의 센스가 엿보이는 장면들이 없던 것 아니었지만, 이런 장면들은 어디까지나 작은 에피소드에 그칠 뿐, 이야기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물론 클리셰라는 건, 많은 사람들이 재미를 느낄만한 요소를 반복하는 것이기에, 뻔하기는 할 지언정 이야기를 잘만 구성한다면 작품 자체는 재밌었다라는 평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설국열차는 이야기의 전개도 그리 짜임새있게 풀어나가지 못했다.

 

  영화 중반부, 꼬리칸 사람들이 반역을 꿈꾸며 윗칸으로 하나씩 전진해나가는 장면까지는 뻔하긴 하더라도 재미를 줄만한 요소는 많았다. 그러나 이후 꼬리칸 사람들은 별다른 이유없이 갑자기 몇몇의 소수 정예만을 뽑아 앞칸으로 보내고 자신들은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비록 희생은 컸지만,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전진해오던 상황을 떠올리면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그리고 이 때를 기점으로 영화의 분위기가 급변한다. 중반부까지 열차 내의 불합리한 세력구도로 인한 반란과 그로 인한 충돌, 혁명을 보여주며 두 세력 간의 다툼에 주목하던 영화가 이 지점을 기점으로 인간 사회에 대한 여러가지 메시지를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이 지점에서부터 액션씬의 비중도 급격하게 줄어들게 된다.

 

  그렇다고 설국열차가 보여준 이야기 전달방식이 성공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영화 후반부 설국열차에서 보여준 여러 가지 메시지들은 이야기에 잘 녹아들지못했고, 오히려 이러한 메시지들을 늘어놓기 위해 더 재미있게 풀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를 죽여버렸다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다.

 

  결국 설국열차는 기존에 봉준호 감독이 보여주었던 강점도 잘 살려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 중반부에 무리하게 분위기를 변화시키면서 이야기의 재미도 잘 살리지 못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봉준호 감독으로서는 아무래도 처음으로 해외진출을 목적으로 만든 영화이니 영화를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 자신의 색채는 줄이고, 조금은 있어보이는 영화를 만들기위해 이런저런 메시지를 삽입한 것으로 보이는데,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도는 실패했다. 차라리 과감하게 자신의 색채를 살리던가, 색채를 줄일 거면, 철저하게 재미있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어야 했는데, 설국열차는 이도저도 아닌 어설픈 시도로 선로에서 이탈한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