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하는 운명카드

                    
                    살해하는 운명카드
                    8점
하얀 늑대들 양장본을 마지막으로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작품활동을 하지 않았던 윤현승 작가가 마침내 신작을 들고 돌아왔다.

제목은 바로 살해하는 운명카드.

윤현승 작가의 작품 중에서는 라크리모사에 이어 두번째 단권인데 라크리모사가 500페이지 정도 되는 작품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적은 분량의 작품이다.

더군다나 윤현승 작가의 작품 중에서는 최초로 판타지가 아닌 심리스릴러물이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판타지만 써오던 작가가 심리스릴러물을 냈다는 부분이 처음에는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원래 윤현승 작가는 항상 자신의 작품에서 참신한 시도를 하려고 노력한 작가인지라 역시 그다운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신작 역시 독자들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작가 윤현승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나 재미있는 이야기에 있다. 세번째 작품인 흑호에서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를 강조한 바 있는 윤현승 작가는 다크문으로 데뷔한 이래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 있긴 했지만 재미라는 면에서는 확실히 호평을 받아왔다. 그리고 이런 재미는 탄탄하고 흥미진진한 전개에 기반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또 하나 높게 사는 것이 윤현승 작가 특유의 재기발랄함이다. 그의 이야기는 대부분 우울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윤현승 작가가 운영하는 블로그의 재기발랄함은 작품들에도 이어져있었다. 이런 재기발랄함은 글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읽는 동안 작품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이러한 장점들은 그의 신작 살해하는 운명카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살해하는 운명카드의 기본적인 전개는 너무나도 익숙하여 이제는 클리셰가 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의 내용이다.

빚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 종민은 어느날 갑작스러운 초대를 받게 된다. 어떤 게임에 참가하면 자신에게 있는 빚을 모두 갚아주고 그보다 많은 돈을 주겠다는 황당한 제안에 종민은 처음에 망설이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게임에 참가하게 된다.

게임의 조건은 간단하다. 일주일 동안 자신의 운명카드에 적혀진 운명을 위반하지 않고 몇가지 조건만 지키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종민을 포함하여 막장인생을 살아온 다섯 명의 운명게임이 시작된다.

이렇듯 내용 자체는 뻔한 내용이지만 여기에 윤현승 작가는 빠르고 탄탄한 전개, 밀도 있는 심리묘사, 그리고 운명카드라는 독특한 소재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윤현승 작가의 고질적인 단점 하나를 비껴가지 못한다.

윤현승 작가는 매번 빈약한 마무리를 지적받았다. 유일하게 이러한 비판에서 피해간 작품은 그의 대표작인 하얀 늑대들 정도며 데뷔작 다크문부터 매번 똑같은 내용의 비판을 들어왔다. 그렇다고 엔딩 내용이 이상하다는 건 아니다. 그가 매번 지적받는 내용은 엔딩의 허무함이었다.

그의 작품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높은 재미를 안겨주지만 막상 책장을 덮고나면 다소 허무한 기분을 안겨주곤 했는데 살해하는 운명카드도 이 부분을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살해하는 운명카드는 대부분의 독자가 이야기의 흐름 상 마지막에 한 번 더 치고나가리라 생각했는데 거기서 멈춰버린다. 반전까지 바란 건 아니지만 종민이 마지막에 사건의 전말을 건네듣고 곧바로 에필로그가 나오면서 책이 끝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나름대로 깔끔한 마무리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아쉬운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