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 - 걸작에 아쉬움을 남긴 두 가지 결점

 

  뿌리깊은 나무는 방영 전부터 2011년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히던 드라마다. 뿌리깊은 나무가 방영 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베스트셀러였던 원작을 드라마화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드림팀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제작진의 네임밸류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PD는 쩐의 전쟁, 바람의 화원 등을 통해 스타 PD로 자리잡은 장태유 PD였으며, 작가는 히트, 선덕여왕 등을 흥행시키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잡는다는 평을 받는 김영현, 박상연 콤비였다. 이렇듯 제작진만 봐도 뿌리깊은 나무는 충분히 기대작이라 할만했는데, 여기에 더해 오랜 시간 드라마를 떠나있던 한석규가 15년 만에 이 작품을 통해 복귀한다고 하니 시청자들의 기대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기대 속에 방영을 시작한 뿌리깊은 나무는 드라마 초반부터 화제를 모으더니, 평균시청률 23%로 월화드라마를 평정하는데 성공했으며, 그 해 SBS 연기대상에서 한석규가 대상을 수상함으로서 2011년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뿌리깊은 나무가 이러한 찬사를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역시나 탄탄한 시놉시스에 있다. 사실 뿌리깊은 나무의 원작은 한글창제를 둘러싼 연쇄살인이라는 독특하고 흥미로운 소재를 제시하긴 했지만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김영현, 박상연 콤비는 이러한 원작의 한계를 파악한 것인지, 원작의 기본틀만 가져온 뒤, 이야기를 완전히 뜯어고쳤다. 그 결과, 그저그런 팩션 추리극이던 뿌리깊은 나무는 추리, 역사, 정치, 로맨스, 액션을 아우르는 풍성한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렇게 달라진 시놉시스를 토대로 캐릭터성에도 많은 변화가 가해졌다. 그 중, 가장 크게 달라진 게, 바로 세종이다. 원작에서 세종은 중요인물이긴 했지만, 등장씬이 그리 많지도 않았고, 마치 신선같은 그저 대단한 인물 정도로만 묘사되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세종은 한석규의 열연에 힘입어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드라마 속 세종은 굉장히 영리하면서도 다혈질이고, 농담따먹기를 즐기며, 한편으로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거듭났다.

 

  사실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세종대왕은 그리 적합한 인물은 아니다. 세종대왕은 분명 한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군주임에는 틀림없지만, 아버지 태종이 마련한 기반 아래서 큰 어려움없이 왕으로서의 역할을 해나갔기에, 갈등구조가 중요한 드라마의 주인공으로는 매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실제로 한국사에 가장 위대한 군주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인물이 세종대왕이지만, 세종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은 손에 꼽을 정도이며, 어쩌다 만들어진 사극 역시 이러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조용히 종영되었다. 그러나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는 탄탄한 시놉시스를 바탕으로 원작에서도 해내지 못했던 개성있는 세종의 모습을 만들어내며, 세종대왕이 주연인 드라마는 망한다는 징크스를 훌륭하게 깨버렸다.

 

  물론 입체적인 세종의 모습을 만들 수 있었던 데에는 배우 한석규의 역할이 컸다. 한석규는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인기와 실력 모두 압도적으로 최상위를 유지하던 남자배우였지만, 2000년대 들어 기나긴 부진에 빠져 있던 배우였다. 어찌보면 15년 만에 드라마로 복귀한 데에는 너무나 길었던 부진의 늪이 한 몫했을 것이다. 너무 길었던 부진 탓에 한석규가 드라마로 복귀한다고 했을 때, 불안한 시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나, 한석규는 이 드라마를 통해 자신이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으며, 작가가 제시한 입체적인 세종의 모습을 기대 이상으로 그려내었다. 시놉시스만 놓고 봤을 때에도,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은 매력적인 인물이었지만, 아마 한석규가 아니었다면, 세종의 매력을 이 정도까지 끌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렇듯 뿌리깊은 나무는 한국 드라마사에 손꼽힐 정도의 탄탄한 시놉시스와 한석규를 비롯한 여러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를 통해 2011년 최고의 드라마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찬사에 비하면 평균 시청률 23%라는 성과는 다소 낮아보이는 게 사실이다. 물론 시청률의 파이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요즘 드라마의 환경에서 평균 시청률 23%는 결코 낮은 시청률이 아니지만, 뿌리깊은 나무의 명성에 비하면 23%라는 시청률은 다소 납득이 가지 않은 수치다.

  기대에 미치치 못하는 성과를 거둔 가장 큰 요인은 앞서 언급한 탄탄한 시놉시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뿌리깊은 나무는 앞서 언급한대로 정치, 역사, 로맨스, 액션을 모두 아우르고 있는데 여기에 각각의 인물들의 개인사까지 포함되어 이야기가 굉장히 복잡하게 전개되는 편이다. 집중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 힘들 정도인데,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TV 리모콘을 잡고 있는 중장년층에게는 다소 따라가기 버거운게 사실이다. 그렇기에 뿌리깊은 나무의 시청률이 기대보다 낮았던 가장 큰 이유는 대한민국 드라마계의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환경적 요인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게, 뿌리깊은 나무라는 작품 자체에도 분명 몇 가지 결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점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뿌리깊은 나무는 원작과는 다르게 무협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액션을 강조하고 있는 작품이다. 분명 역사 팩션에 무협적인 요소를 넣는다는 건,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다. 문제는 이를 얼마나 잘 그려내는가인데, 아쉽게도 뿌리깊은 나무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협적인 요소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 뿌리깊은 나무의 무협적인 요소는 시종일관 다른 요소들과 융합되지 못한 채, 혼자서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만드는데, 이러한 느낌이 들게 한 가장 큰 요인은 역시나 조금은 어설펐던 연출이지만, 시놉시스 상의 문제점도 분명 존재한다. 뿌리깊은 나무는 여러 가지 요소가 삽입된 작품이지만 기본적으로 정치와 추리에 기반을 둔 작품이다. 그리고 정치와 추리는 기본적으로 현실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따라서 정치와 추리에 판타지적인 요소를 도입하려면 세밀한 세계관이 필요하다. 그러나 뿌리깊은 나무의 무협적인 요소는 그저 정치와 추리에 무협을 얹어놓은 듯한 형상이었으니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무협이 다른 요소들과 따로 노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무협이란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적지 않았던 것을 고려한다면, 좀 더 세밀한 세계관을 제시하지 못했던 점은 무척이나 아쉽다.

  또 하나의 결점은 바로 세종의 라이벌이자 뿌리깊은 나무 최고의 악역인 정기준이다. 정기준은 한국 사극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매력적인 악역이었다. 대게 한국 사극에서 악역들은 권력싸움에 몰두하거나 그냥 나쁜 놈 정도로만 그려져왔다. 하지만 기존의 악역들과는 달리 정기준이 해온 악행의 기반에는 사상적 대립이 있었다. 정기준은 정도전의 동생 정도광의 아들로 역사적으로 정도전이 주장했던 재상중심체제 및 의정부서사제를 계승한 인물이다. 그렇기에 애초에 왕족으로 태어난 세종과는 사상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었고, 바로 이 점이 악역으로서 정기준의 매력포인트였다. 하지만 세종이 한글을 만들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이러한 정기준의 매력은 사라지고 만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름대로의 사상적 기반을 가지고 세종과 대립하던 정기준이 이 순간부터 좀처럼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세종과 대립하며 계속해서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드라마 상에서는 정기준의 부하들조차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건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정기준의 이해가 가지 않는 한글에 대한 증오는 결국 드라마의 중심축을 흔들어놓고 말았다. 세종과 정기준의 대립은 뿌리깊은 나무에서 가장 중요한 갈등구조였다. 각자의 주장은 나름대로 타당했고, 그로 인해 시청자들은 어느 한편에 쏠리지 않은채, 팽팽한 대립구도를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기준이 억지스러운 주장을 늘어놓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대립구도는 붕괴되었고, 결국 정기준은 이해가 가지 않는 그저그런 악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뿌리깊은 나무는 대한민국 사극에 한 획을 그을 정도로 소재와 시놉시스, 배우들의 연기력 면에서 손색없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러한 요소들을 잘 조합하여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완성도 있게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2011년 가장 주목받는 드라마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더욱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중심이 되는 부분에서 발생한 두 가지 결점으로 인해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거둔 건 다소 아쉽다.

  • Mrdr 2014.03.15 00:26 ADDR 수정/삭제 답글

    나는 글 쓴 분이 지적한 그 두가지 때문에 대중성과 철학적인면에서 성공했다고 봅니다. 또한 두 인물의 대립구도 또한 충분히 설득력이 있음에 대해 작가의 심리적 갈등묘사에 탄복까지 할 정도였는데 그게 이해가 안간다니 세상살이 참 쉽게 하셨다 봅니다.그려...

    • 성외래객 2014.03.15 13:08 신고 수정/삭제

      우선 단순한 작품에 대한 의견에 세상살이를 쉽게 했네 어쩌네를 말씀하시는 저의를 모르겠네요. 작품에 대한 평가에 따라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까지 판단이 가능하시다니 참 놀라운 식견입니다.

      다만, 자신이 좋게 본 작품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공격적인 언사를 하실 정도로 인내심이 부족한 분께서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