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손가락(2007) - 세밀하지 못했던 이야기 구조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가 인생과 궤를 같이 해온 가가 형사 시리즈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가가 형사 시리즈가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현역으로써 높은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대다수의 팬들이 손꼽는 가가 형사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특유의 인간미다.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주었던 악의를 제외하면 가가 형사 시리즈는 항상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분위기를 유지해왔는데, 그 중에서도 이러한 색채가 가장 강렬하게 드러난 작품이 바로 붉은 손가락이다.

 

  붉은 손가락은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 탈선, 가정의 해체 등을 가가 형사 시리즈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분위기로 풀어낸 작품이다. 전개과정이 다소 뻔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붉은 손가락은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세밀한 심리묘사와 훈훈한 분위기를 잘 살려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또한, 가가 형사 시리즈는 초기작인 졸업이나 잠자는 숲 때까지만 하더라도 가가 형사의 시점에서 내용을 전개했지만,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에서부터는 다른 이들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갔기에, 좀처럼 가가 형사의 개인사나 내면이 노출되지 않았다. 붉은 손가락 역시 다른 이들의 시점에서 내용이 전개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가 형사의 개인사나 그의 내면을 알 수 있을 법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시리즈의 오랜 팬이라면 이런 부분들 역시 만족스러웠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의 재미와는 별개로 완성도 면에서는 이전 시리즈들에 비하면 조금 아쉬웠다. 붉은 손가락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직접 언급한 것처럼, 처음에는 ‘거짓말, 딱 한 개만 더’에 수록될 단편 중 하나로 기획되었다가 장편으로 전환된 작품이다. 그래서 그런지 붉은 손가락의 이야기 구조는 ‘거짓말, 딱 한 개만 더’에 수록된 단편들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문제는 단편으로 기획되었던 작품을 장편소설로 바꾸다보니 이야기의 템포가 다소 느슨해진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부분들을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세밀한 심리묘사가 어느 정도 보완해주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심리묘사만으로 이러한 부분들을 보완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아마 히가시노 게이고는 단편을 장편으로 전환하면서, 이야기의 전반적인 구조 자체는 건드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이야기 자체의 세밀함은 이전 작품들에 비하면 다소 떨어지고 말았다. 물론 앞서 언급한대로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작품 자체의 재미는 유지했지만, 완성도 높은 전개를 보여주었던 이전 작들을 떠올릴 때, 붉은 손가락의 이야기 구조는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