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의 규칙(2010) - 정형화된 추리 공식에 반기를 들다

  아마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성만을 듣고 이 책을 편 독자라면, 첫 장면에서부터 조금은 당혹감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이 책은 명탐정 덴카이치와 반조 경감을 내세워 사건의 진실을 찾아내는 추리소설의 형태를 취하고는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기존의 정형화된 추리 공식을 희화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적어도 국내에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진지한 추리 소설을 쓰는 작가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사전 정보 없이 이 작품을 접하게 된다면 확실히 당황스러울 것이다.

 

  반조 경감은 프롤로그에서부터 자신이 범인과 트릭을 알아내더라도 명탐정의 활약을 위해 침묵해야한다고 투덜대고 있으며, 덴카이치 탐정은 첫번째 사건이 밀실살인의 형태를 취하자 지긋지긋하다며 치를 떤다. 이후로도 덴카이치 탐정과 반조 경감은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마지막 장까지 오랜 세월 추리 소설에서 수도 없이 쓰여진 각종 공식들을 조롱하는 데 열을 올린다. 그 와중에 이들은 소설 속의 세계와 소설 밖의 세계를 오가며, 사건에 맞춰 성별(?!)과 직책을 자유자재로 바꾸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추리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만큼, 맨 마지막에는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긴 하지만, 사건의 진상 역시 우스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독자들이 주인공들에게 쓰레기들 던지면 분노하는 장면까지 나오겠는가? 이 쯤되면 이 작품은 사실상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추리 소설은 소재로 한 콩트 혹은 만담집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덕분에 명탐정의 규칙에 내포된 비판은 무척이나 날카롭지만, 어디까지나 콩트에 가까운 형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가벼운 편이다. 아마 히가시노 게이고의 진지한 작품만을 접해온 독자라면 의외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개그에도 어느 정도 소질이 있다는 것에 조금은 놀랄 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명탐정의 규칙은 앞서 언급한대로 기존 추리 소설에 대한 비판의식을 함유하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콩트의 가까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출간한 이후 히가시노 게이고의 행보가 어느 정도 일관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명탐정의 규칙 출간 이후 같은 해에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와 악의를 발표했다. 두 작품은 모두 가가 형사 시리즈인데, 사실 이전의 가가 형사 시리즈는 드라마적인 요소에 초점을 맞춰서 나름대로의 특색을 보여주긴 했지만, 실험적인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시리즈였다. 하지만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와 악의는 전작들의 행보와는 달리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 중에서는 실험적인 요소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정확한 의사는 알 수 없지만, 작품의 출간년도만 본다면, 명탐정의 규칙에서 보여준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판의식이 어느 정도 후속작품들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봐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 우연히 지나가다 2012.09.13 15:29 ADDR 수정/삭제 답글

    우연히 지나가다 들렸습니다. 블레이드헌터에 대한 평을 잘 읽어서 말입니다.
    글을 잘 쓰시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작품에 대한 통찰의 수준이 상당하신 것 같아서
    제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다른 작품들에 대한 정보들을 얻어가려고 합니다.
    아무쪼록 좋은 글 감사히 읽었고 앞으로도 많은 정보 부탁드리겠습니다^^ 수고하시길

    • 성외래객 2012.09.15 16:26 신고 수정/삭제

      재밌게 읽으셨다니 기쁩니다ㅎㅎ
      꾸준히 업데이트 할테니 앞으로도 자주 들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