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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마그나카르타:눈사태의 망령(2001) - 한국 PC게임 사상 최악의 실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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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전3 파트2로 창세기전을 끝맺은 소프트맥스는 창세기전의 영광을 이어갈 후속작품으로 마그나카르타:눈사태의 망령을 발표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창세기전이 끝난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기에, 국내 유저들에게 소프트맥스는 한국 최고의 게임회사로 인식되고 있었다. 각종 게임 프로그램에서 마그나카르타 특집방송을 마련할 정도로, 마그나카르타에 거는 기대는 높았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참혹했다. 마그나카르타는 게임을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의 버그를 남발했고, 사상 초유의 게임 리콜사태가 발생했다. 높았던 기대만큼이나, 실망도 컸기에 유저들은 버그나카르타, 만들다말았다 등의 별칭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이른바 마그나카르타 사태라 불리우는 이 사건으로 인해 소프트맥스는 회사의 기반이 흔들릴 정도의 타격을 입었다. 경제적 손실도 손실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소프트맥스에 대한 신뢰도가 그야말로 박살이 난 것이다.

 

  또한, 이 사태로 인해 한국 PC게임계는 사실상 종말을 맞이했다. 2000년대 초반 대부분의 국민에게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등장한 와레즈로 인해 한국 PC게임계는 이미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었지만, 그야말로 최후의 보루라고 할만한 소프트맥스마저 자신들의 실수로 무너지면서 사실상 시장 자체가 소멸되어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또 하나의 기대작 천랑열전 역시 버그열전이라 불릴 정도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후 그녀의 기사단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 게임회사가 PC게임을 발매하는 일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렇듯 수많은 버그로 인해 마그나카르타는 몰락했지만, 버그가 아니었더라도 마그나카르타는 몰락할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성이 그야말로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소프트맥스는 게임성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 회사이긴 했지만, 마그나카르타는 정도가 심했다.

  마그나카르타는 소프트맥스에서 자체제작한 아수라 엔진을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진 게임이다. 그런데 이 아수라 엔진이란 게,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지라, 게임 내의 모든 맵은 비좁기 그지 없으며, 던전이라 이름붙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맵이 단순했다. 그런데 또 어떻게 된 게 게임 내 인카운터율은 꽤나 높은 편이라 그 비좁은 맵에서 수없이 전투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 전투 역시 개판 오분전이라 게임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다. 오로지 스페이스바 하나로만 전투가 진행되며, 전반적으로 지루하기 짝이 없다. 사실 일종의 리듬게임을 연상케하는 전투 자체의 아이디어는 참신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소프트맥스는 자신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했다. 이러한 전투방식은 후에 플레이스테이션2로 발매된 마그나카르타:진홍의 성흔으로 계승되는데, 상당 부분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RPG게임으로서는 치명적인 전투의 지루함을 피해가진 못했다.

  또한, 한국의 파이널 판타지를 표방하며 소프트맥스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3D 그래픽은 그야말로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물론 당시의 기술력을 감안하면, 그래픽 자체야 어느 정도 봐줄만 하지만, 문제는 연출이었다. 목석 같은 캐릭터들의 움직임, 긴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묘사,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이벤트씬은 도저히 게임에 몰입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렇듯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라 할만한 마그나카르타였지만, 그래도 건질만한게 있다면, 음악과 일러스트, 그리고 스토리였다. 이 3가지 요소는 창세기전 때부터 호평을 받아온 소프트맥스의 강점이었는데, 희대의 망작이었던 마그나카르타에서도 이 3가지는 자신의 몫을 해냈다. 아니, 사실 마그나카르타가 워낙에 망해서 그렇지, 이 3가지는 역대 소프트맥스 게임들 중에서도 가장 수준 높은 모습을 보여준다.

 

  게임의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마그나카르타의 음악은 대체로 진중하고 애절한 느낌을 풍기는데, 특히 The Phantom of Avalanche, Theme of Estel 등의 곡은 소프트맥스 음악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에 꼽힐 정도로 뛰어나다. 그 밖에도 엔딩곡인 ‘Time Passes by’도 호평을 받았는데, 이 곡을 부른 엄지영은 이후 게임 가수 1호로 불리며 나름대로 매니아층을 구축하게 된다.

  창세기전 외전 템페스트에서부터 소프트맥스의 일러스트를 맡은 김형태는 마그나카르타에서도 기대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마그나카르타 특유의 진중한 분위기와 김형태의 일러스트가 잘 맞아떨어져 어느 정도 시너지 효과를 내지 않았나 싶다.

 

  마그나카르타의 스토리는 무척이나 탄탄한 편이다. 아니, 소프트맥스 게임 중에서 스토리의 완성도 면에서는 최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스토리 하나만큼은 정말로 수준급이다. 실제로 한 인터뷰에서 최연규 이사는 마그나카르타를 제작할 때, 스토리에 가장 많은 공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창세기전은 연속된 이야기였던 지라 스토리를 만들 때, 여러 가지 제한사정이 있었지만, 마그나카르타는 독립된 작품이라 그동안 시도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요소를 도입할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사실 마그나카르타는 창세기전과 비교하면 이야기의 스케일 자체는 작은 편이다. 행성을 오고가는 스케일을 보여주었던 창세기전이 워낙에 스케일이 컸던 것도 있겠지만, 마그나카르타는 어디까지나 주인공인 칼린츠 주변의 이야기로 무대를 한정시켰기에,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봐도 이야기의 스케일이 작은 편이다. 그렇기에 플레이타임 역시 창세기전에 비하면 짧은 편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스케일이 작아진만큼, 이야기 자체는 더욱 더 세밀해졌다. 초반부 단순히 요석을 정화하려고 왔다갔다하던 부분에서부터 여러 가지 복선을 깔아두었다가 중후반부에 그동안 깔아둔 복선을 모두 폭파시키며 유저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는 절로 대단하다는 소리가 나오게한다. 또한, 마그나카르타에는 소프트맥스 스토리 특유의 애절함 역시 잘 녹아들어있는데, 특히 Theme of Estel이 흘러나오며 펼쳐지는 마지막 엔딩씬은 소프트맥스식 스토리의 강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여기에 소프트맥스는 마지막 추가영상으로 스토리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렇듯 마그나카르타는 소프트맥스 고유의 강점을 유감없이 보여준 게임이다. 하지만 소프트맥스의 고질병이었던 게임성이 마그나카르타에서 바닥을 쳤고, 게임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버그로 인하여 결국에는 한국 PC게임 사상 최악의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사실 순수하게 작품만 놓고보자면 마그나카르타보다 게임성이 떨어지는 작품이 수두룩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마그나카르타는 당시 한국 PC게임계 최후의 보루였다. 그런데 그러한 최후의 보루가 어이가 없을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었고, 결국 한국 PC게임계는 그대로 끝이 났다. 한국 PC게임계가 멸망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마그나카르타가 시장의 종말을 앞당겼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마그나카르타는 단순히 비난만 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분명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PC게임 사상 최악의 실패작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