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푼젤(2010) - 탑 밖으로 나온 공주님

  디즈니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절대 강자였지만, 2000년대 들어 침체기에 빠져있었다. 2000년대 들어 극장판 애니메이션 시장은 3D 애니메이션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디즈니는 이러한 변화상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결국 업계의 주도권을 경쟁업체들에게 내주게 된 것이다. 다른 경쟁업체들이 슈렉, 아이스 에이지 등의 작품들을 발표하며 승승장구하는 동안 디즈니는 연이은 실패를 맛봐야만 했다. 디즈니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인식한 것인지, 셀 애니메이션 대신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도 했지만, 그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물론 자회사인 픽사는 내놓는 작품들마다 흥행에 성공하긴 했지만, 2000년대 들어 순수하게 디즈니의 이름을 달고 나온 작품 중 이렇다할 성과를 보여준 작품은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온 작품이 바로 디즈니의 50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라푼젤이다. 디즈니는 자신들의 50번째 작품을 기념하여 극장판 애니메이션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었는데, 오랜 시간 디즈니가 침체기에 빠져있었기에 평단과 관객은 라푼젤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라푼젤은 괜찮은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디즈니가 드디어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는 호평을 받게 된다.    

 

  사실 원작 라푼젤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에 적합한 작품은 아니었다. 애초에 원작 자체의 길이도 짧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공간이 탑 안으로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다양한 볼거리를 보여주기도 힘들었다.

  그렇기에 디즈니는 과감하게 라푼젤을 탑 밖으로 끌어냈다. 작중에서 라푼젤은 왕궁으로의 여정을 위해 탑 바깥으로 나오게 되었으며, 러닝 타임의 대부분을 탑 밖에서 보내게 된다. 그리고 탑 바깥에서 벌어진 사건의 대부분은 3D라는 특성을 활용한 다양한 액션씬과 얽혀 있다. 일종의 활극물로 느껴질 정도로 애니메이션은 액션에 많은 공을 기울였는데, 이 부분은 작품 특유의 유쾌하고 동화같은 분위기와 맞물려 호평을 받았다. 특히나 라푼젤의 긴 머리를 활용한 각양각색의 아크로바틱한 액션은 여러 가지 상황을 만들어내며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어내었다.

 

  스토리와 캐릭터 역시 호평을 받았는데, 스토리의 경우 빼어나다고까지 말하기는 힘들었지만, 적어도 2시간 정도의 러닝 타임 동안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라푼젤은 생각 이상으로 사랑스러웠으며, 플린 역시 뺀질거리면서도 귀여운 남자의 이미지를 잘 보여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라푼젤의 캐릭터 중 가장 빛이 났던 건 마녀 고델이었다. 고델은 자신의 젊음을 위해 어린 시절 라푼젤을 유괴한 악역 캐릭터였지만, 라푼젤을 향한 모정과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며,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입체적인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다만 아쉬운 건, 이렇게 잘 구축된 캐릭터가 후반부에는 그저그런 악역으로써 그치고 말았다는 점이다. 이야기 중반부까지 선악이 모호한 캐릭터를 잘 유지하다 마지막에 그저그런 악역으로 묘사된 건, 아무래도 이야기의 뒷심이 조금 부족했던 건 아닌가 싶다.

 

  이야기의 뒷심이 부족했던 건, 라푼젤의 눈물이라는 설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실 원작에서도 왕자가 시력을 잃었을 때, 라푼젤의 눈물로 시력을 회복하는 장면이 나타나긴 한다. 그러기에 마지막에 라푼젤의 눈물이 등장한 건 어찌보면 원작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세련된 감각으로 재구성된 동화를 보여주었던 라푼젤이 후반부 너무나도 뻔한 전개를 보여준 건, 확실히 뒷심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라푼젤은 정말이 오래간만에 디즈니의 저력을 보여준 작품이다.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다소 빛이 바라긴 했지만, 그래도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손꼽힐 만한 수익을 거둔 작품이며,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 마지막 뒷심이 부족했던 게,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명가의 부활을 선언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