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국내에서 웹툰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이래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높은 인기를 얻은 몇몇 웹툰 중에는 연재기간이 5년을 넘어가는 장기연재작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한 회 분량이 기존의 잡지만화에 비해 짧은 웹툰의 특성상 대부분의 장기연재작들은 마음의 소리 같은 코미디물이나 수사9단과 같은 옴니버스 식이 대부분이었고 하나의 줄거리를 가진 웹툰의 경우, 그러니까 이른바 스토리형 웹툰의 경우에는 대체로 1년에서 2년 남짓한 기간 내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하나의 스토리를 가지고 연재되는 대부분의 웹툰의 경우 아무리 길어봤자 100화 아내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스토리형 웹툰이 대다수는 강풀 정도의 대형 작가를 제외하고는 단편물들에 비해서는 인기가 떨어지는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웹툰 중에서도 장기연재작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고, 단편물들 못지 않은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 그 중의 대표주자는 역시나 네이버의 간판 웹툰 중 하나인 노블레스라고 할 수 있다.

노블레스는 전세계적으로 강력한 팬덤을 구축한 뱀파이어물을 기반으로 학원물과 배틀물. 그리고 미형 캐릭터 등의 요소를 첨가한 작품이다. 이러한 요소의 결합은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가지고 왔는데, 뱀파이어물의 경우, 트와일라잇 등의 시리즈로 인해 남녀 불문하고 팬층이 두터웠고, 학원물과 배틀물은 잡지만화 때부터 한상 선호되던 장르였다. 더군다나 손제호 작가의 매력적인 캐릭터 설정과 이광수 만화가의 수려한 그림체는 등장인물들에게 강력한 캐릭터성을 부여했다.

그 결과, 노블레스는 스토리형 웹툰으로는 드물게 독보적인 인기를 선보이며 네이버 웹툰의 간판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다른 네이버 웹툰의 간판들과 비교했을 때, 스토리형 웹툰이 이 정도까지의 인기를 자랑한다는 건, 꽤나 놀라운 일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인기가 국내에 한정된 게 아니라 북미권에서도 꽤나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니, 대단하긴 대단한다.

확실히 노블레스는 연재가 장기화되면서 여러 면에서 비판을 받긴 하지만, 무척이나 흥미로운 작품이다. 국내 웹툰에서는 그동안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시원시원한 액션씬도 매력적이도 무엇보다도 남성팬과 여성팬을 모두 공략한 캐릭터 설정은 꽤나 돋보이는 요소다.

사실, 노블레스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남성팬보다는 여성팬들에게 인기를 끌만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작가도 작품 초반부부터 BL의 요소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작중 펼쳐지는 자잘한 에피소드들은 이른바 동인녀들의 심장에 그대로 직격했다(...)

화려한 전투장면에서 드러나는 라이와 프랑켄슈타인 등의 강력한 카리스마는 강한 남자에 환호하는 남성팬들에게도 여성팬 못지 않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시즌1 후반부, 그야말로 전설로 길이길이 남을 대사인 "꿇어라. 이것이 너와 나의 눈높이다."라는 대사에 카타르시스를 느낀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거다. 정말 폭풍간지라는게 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한 방이었다.

스토리 또한 나쁘지 않은 편인데, 현재 4시즌이 진행되고 있는 노블레스의 스토리를 돌아보면, 이야기 자체가 무척이나 빼어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진행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아주 쉽지도, 그렇다고 아주 어렵지도 않은 각종 떡밥들은 라이트 팬과 골수팬 모두를 휘어잡는데 적절하게 기여했다.

가끔 스토리 진행이 더디다는 비판이 있기도 한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동감하기 힘들다. 물론 노블레스는 매주 한 편씩 연재되는 작품이고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한달이 넘어가는데도 라이와 프랑켄슈타인이 아직도 전투지역으로 달려가는 걸 보면 복장이 뒤집어지는 게 사실이지만(...) 이 작품의 전체 분량을 고려한다면 스토리 진행이 더디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현재 책으로도 출간된 시즌1과 시즌2의 경우 전자가 18개월, 후자가 12개월 동안 연재되었는데 각각 3권의 구성으로 되어있다. 대부분의 잡지만화가 4개월에 한 번 꼴로 단행본이 나와 1년에 3권 정도의 책을 낸다는 걸 감안하면 그렇게 나쁜 연재속도는 아니다. 그리고 그 세 권 안에 한 가지 에피소드가 마무리가 된다는 건 이야기 배분 실력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배틀물을 소재로 한 잡지만화의 경우에도 주구장창 전투만 하는게 아니라 중간중간 대화만 하고 넘어가는 연재분도 존재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잡지만화는 빠르면 2주에 한 번, 늦으면 한달에 한 번 나오기에 이러한 부분이 좀 덜해 보이지만 웹툰의 경우에는 똑같은 한달짜리 분량이라도 4회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에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4주째 대화만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만도 하다. 그러나 잡지만화와 비교해보면 노블레스의 스토리 진행이 매우 더디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똑같이 지적받은 캐릭터의 공기화와 같은 지적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타키오의 경우에는 저격이라는 특성상 액션씬에서 비중이 떨어져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선우를 비롯한 학생들의 경우에는 노블레스의 이야기 전개상 벌써부터 큰 활약을 펼치기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 또한 노블레스는 현재 연재분을 보아도 이제야 중반부에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꽤나 긴 페이스로 작품을 진행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시즌에서 다소 비중이 떨어진 인물이 다음 시즌에서는 비중이 높아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몇몇 캐릭터의 공기화를 지적하는 건 조금 무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꽤나 길게 노블레스에 대한 옹호론을 펼쳐놓기는 했지만 노블레스가 그야말로 명작 반열에 들 작품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일단 무엇보다도 지적하고 싶은 점은 작가의 지나친 개그 욕심이다. 노블레스는 화려한 액션씬 못지 않게 간간이 터지는 개그씬이 일품인 작품인데 문제는 이게 가끔 작품의 전반적인 흐름을 방해할 정도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닥터 아리스와의 대결에서 터진 일명 유기농 딸기 드립이다. 당시 작품의 전개 상, 이 장면은 꽤나 진지한 분위기였고, 비록 프랑켄슈타인이 우세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타키오가 인질로 잡힌 상태라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 지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타키오의 약을 뺏어먹은 아리스가 갑자기 유기농 딸기 드립을 치고 전투 자체가 허무하게 종결되어버렸으니 보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 장면은 시즌2의 마지막 액션씬이었다.

그 밖에도 가끔 무리수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은 개그씬은 작품 전체의 흐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작가 자신의 개그욕심에도 어느 정도 문제가 있지만 매주 연재되는 웹툰의 특성상 작품 말미에 어떻게든 웃긴 장면을 하나씩 넣어보려는 시도일 수도 있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가끔 너무 지나친 느낌을 주곤 한다.

그리고 노블레스에서는 시즌 말미에 감동적인 장면들이 하나둘 들어가곤 하는데 잘만 연출한다면 간지퐁풍에 감동까지 더해준 장면이 되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다소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주곤 한다. 시즌2에서 라이가 등장했을 때, 그의 강함을 모르는 선우 일행이 울음을 터뜨린 장면이 대표적인데, 여자아이들이나 익한의 경우에는 그렇다치더라도 선우의 경우에는 강력한 상대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을 정도로 정신력이 좋은 편인데 거기서 같이 울음을 터뜨리니 다소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지나치게 강력한 라이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존재다. 아직 작품이 진행 중인 시점인지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판단을 보류할 필요가 있지만, 잘못하면 이 부분은 노블레스의 강력한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프랑켄슈타인은 그래도 시즌3에서 그가 어느 정도로 강한지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의 대사들이 나왔기에 그렇다고 치지만 라이의 경우에는 현재까지 적수가 없다. 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상황인데, 심지어는 라이 다음으로 가장 강력한 존재로 여겨졌던 로드에게마저 눈높이 교육법을 실시(...)함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를 또 한 번 증명했다.

그리고 현재 작품의 진행상 가장 강력한 적은 닥터 크롬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사람 역시 잘해봐야 프랑켄슈타인 정도의 수준으로 묘사되기에 현재 상태라면 라이에게 끔살당할 확률이 매우 높다(...)

최근 연재분에서 라이에 능력이 제한이 있다는 떡밥이 등장하기도 했고, 손제호 작가가 먼치킨 물에서 강세를 보인 점을 감안하면 이 점을 어떻게든 조정할 거라 생각은 되지만 이 부분이 그럴 듯하게 해결되지 못한다면 작품의 긴장감이 크게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배틀물에 있어서 치명타다.

뭐, 이래저래 길게 써놓긴 했지만 노블레스는 확실히 오락물로는 탁월한 작품이다. 앞서도 언급했듯 액션도 시원시원하고 지난 5년간 구축된 캐릭터성 역시 상당한 수준이다. 5년이란 세월 동안 네이번의 간판 웹툰으로 활약한 데에는 확실히 이유가 있었다. 다만 몇몇 부분에서 아쉬운 지점들이 보이고, 그로 인해 수작이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명작이라고까지 부르기에는 조금 힘들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