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인범이다(2012) - 시나리오와 액션의 불협화음

 

  내가 살인범이다는 연쇄 살인범이 공소시효가 지난 후, 자신의 범죄를 고백한다라는 다소 파격적인 소재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어찌보면 다소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소재였지만, 확실히 소재 자체는 관객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영화의 시나리오는 이러한 파격적인 소재를 나름대로 개연성 있게 풀어나간다. 대개 파격적인 소재를 선택한 작품의 경우, 스토리가 소재에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살인범이다는 적어도 소재에 스토리가 묻히지는 않았다. 앞서 언급한대로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소재를 대다수의 관객이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풀어냈으며, 특히 최근 개봉한 영화 중에서는 손에 꼽힐 만한 반전까지 보여주었다.  

  그러나 나름대로 괜찮게 구성된 시나리오를 영화는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내가 살인범이다는 스토리만 놓고 봤을 때, 스릴러에 가까운 영화이며, 가볍지 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는 만큼 대체로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실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이야기를 가볍게 전개시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살인범이다는 굳이 넣지 않았어도 될 장면들을 집어넣어 기껏 유지해온 무거운 분위기를 스스로 망치고 만다. 대표적인 장면이 초반부에 등장한 추격씬이다. 사실 추격씬 자체만 놓고 본다면 나름대로 괜찮은 장면이었지만, 문제는 추격씬의 분위기가 진지하다기보다는 유쾌했다는 점이다. 흡사 8~90년대의 성룡영화를 보는 기분의 추격씬이었는데, 덕분에 이 때의 추격씬은 꽤나 공들여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의 무리수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분위기를 헤치는 장면은 추격씬만이 아니었다. 영화 초반 피해자 가족들이 모임을 갖는 장면이라던가, 피해자 가족 중 한 명이 이두석을 저격하는 장면들은 전체적인 영화의 흐름과 따로 노는 느낌을 안겨준다. 그리고 이러한 장면들의 공통점은 피해자 가족들이 중심이 되는 액션씬이라는 점이다. 

  내가 살인범이다는 연쇄살인범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만큼, 전반적으로 리얼리티한 분위기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영화에서 80년대 홍콩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피해자 가족들은 어울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피해자 가족들이 등장하지 않아도 영화를 진행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물론 한 두명의 피해자 가족들은 영화 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등장해야 하지만, 그 밖의 인물들은 이야기 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  

 

  굳이 피해자 가족들이 연쇄살인범을 직접 처벌하려한다라는 구조를 집어넣은 건, 영화 마지막의 내용전개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그런 것으로 보이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을 너무 크게 벌렸다. 그런 데다가 영화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은 이질적인 액션씬들로 인해 영화의 몰입감을 크게 저하시켰다. 탄탄한 시나리오로 인해 전반적으로 영화의 완성도가 높았던 점을 감안하면, 이 부분은 꽤나 아쉽다. 작품 초반 회상씬에서 나타난 추격 장면, 그리고 반전 이후의 액션씬이 영화의 분위기와 잘 맞물렸다는 걸 생각하면, 제작진 쪽에서 다양한 액션씬을 보여주려고 너무 과한 욕심을 부린 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