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걷다 - 2010 경계문학 베스트컬렉션

                     
                       꿈을 걷다
                      8점

한국의 장르문학은 대여점이라는 시장에 기반해 성장해왔기에 단편보다는 장편이 선호되는 경향이 강했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에 나온 장르문학 단편집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한국 장르문학에서 단편의 존재는 미미했다. 이 중에서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사례는 이영도 판타지 단편집 정도였다.

그러다가 2007년부터 장르문학 출판사들이 판매용 시장을 본격적으로 개척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대여점 시장에서는 성공하기 힘들었던 소재의 글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장르문학 단편집들도 출간되기 시작하였는데 예전과는 달리 시장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고 이에 따라 많은 수는 아니지만 꾸준하게 단편집이 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꿈을 걷다는 2008년 판매용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로크미디어에서 새롭게 만든 브랜드, 노블레스 클럽의 11번째 책이었는데 작가진이 드림팀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탄탄한데다가 내용 역시 만족스러웠기에 호평을 받았다.

꿈을 걷다 - 2010 경계문학 베스트컬렉션은 이러한 호평을 기반으로 정확하게 1년 후 나온 후속 단편집이다.

첫번째 작품은 개학날로 양말 줍는 소년으로 이름을 알린 김이환 작가의 작품이다. 작가가 말했듯이 양말 줍는 소년의 후일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작품 자체가 나쁜 편은 아니었고 양말 줍는 소년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좋아할만한 내용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소 밋밋하게 보일 수 있는 내용이었다.

두번째는 김지훈 작가의 페르마의 부탁인데 악마의 부탁이라는 다소 식상한 소재를 생기발랄하게 묘사해놓긴 했지만 흥미로웠던 초반 전개에 비해 마무리에서 힘이 좀 빠졌던 것 같다.

세번째는 문영의 아내를 위하여다. 이글루스에서 초록불이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작가인데 일종의 시간여행물이라고 볼 수 있는 글이다. 이야기 자체는 이제 클리셰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전개였지만 자신만의 개성으로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재밌게 잘 풀어놓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네번째는 수담옥의 일검쟁위다. 이 작가이 글은 이 단편집을 통해서 처음 읽었는데 초반부가 다소 지루한 느낌이긴 했지만 중반부 전개와 마무리가 인상적이었다.

다섯번째는 이재일의 문지기. 2009 때, 무척 기대하고 읽었다가 실망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렇게까지 기대는 안 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괜찮은 단편이 나왔다. 내용 자체는 대체로 예상이 가는 전개였지만 작가의 말처럼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여섯번째는 장경의 미싱 링크다. 이 단편에서는 유일한 SF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실망스러웠던 단편이다. 소재 같은 건 나쁘지 않았지만 장편으로 가야할 글을 억지로 단편으로 만든 느낌이었다. 짧은 내용에 비해 너무 많은 설정들이 들어갔고 정작 진행된 내용보다는 설정에 대한 설명이 많았던 느낌마저 들었다. 다 읽고 나서도 하나의 작품을 읽은게 아니고 어떤 장편의 예고편을 읽은 느낌이었다. 마무리조차도 뜬금없었고.

일곱 번째는 좌백의 마음을 베는 칼이었는데 이 작가 역시 2009에서 실망했던 적이 있는지라 이번에는 어떨까 했는데 지난 번과는 달리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작품이 나왔다. 긴 호흡으로 한 순간에 작품을 관통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매끈한 전개를 보여줬던 것 같다.  

여덟 번째는 진산의 안다미다. 솔직히 설정같은 게 나쁜 건 아니었는데 이 작품 역시 장편으로 가야할 글이 단편으로 나온 느낌이 들어서 끝나고 나서도 영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아홉 번째는 하지은의 나를 위한 노래인데 역시나 이 작가는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누구나 한번쯤 해볼 생각을 바탕을 소재로 택하고 이걸 마무리에서 비틀어버렸는데 역시 하지은이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전개가 탄탄했다. 공교롭게도 문영과 비슷한 소재를 사용했는데 한 권의 책에 비슷한 소재를 가졌지만 전혀 다른 두 작품이 실려있다는 점은 작품 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열번째는 한상운 작가의 강호인데 개인적으로 이 책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다. 한상운 작가의 매력은 역시나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매력적으로 그려낸다는 점인데 이 작품 역시 단편임에도 그러한 장점이 잘 드러났으며 후반부에 연이어서 드러나는 반전은 강하지는 않았지만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열한 번째 작품은 레디오스, 홍성화의 세상 끝으로라는 작품이다. 작년에 매우 실망스러웠던 단편에 비해서는 한층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며 동화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안겨준 단편이었지만 뭔가 전반적으로 심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차라리 초안대로 웃기는 글로 밀어붙였다면 웃겼다라고도 기억하겠는데 딱히 기억에 남을 만한 임팩트가 없었다.

전반적인 감상은 2009년에 비해 전민희, 윤현승, 민소영 등의 작가가 빠지면서 작가진은 전에 비해 화려하지 않았지만 내용만큼은 2009년 못지 않았다. 그리고 2009와는 달리 작품이 시작하기 전, 작가의 말이 1~2페이지 정도 실려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작품에 대한 소개를 작가에게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책 자체도 좋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작품외적으로 한국 장르문학의 외연을 확대시킬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는데 안타깝게도 올해에는 후속 단편집이 나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작년 12월을 끝으로 올해에는 노블레스 클럽 자체가 한 권의 책도 내지 않았다.

확실히 노블레스 클럽 초창기에 비하면 관심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대체로 양질의 작품을 내놓던 브랜드라 올해의 모습은 상당히 아쉽다. 거기다 공식 카페에도 새 글이 아예 올라오지 않을 걸 보면 사실상 사업을 접은 걸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던 브랜드였기도 했고, 로크미디어에서 대여점용 책은 꾸준히 나오는데 노블레스 클럽은 4년 만에 이렇게 된 걸 보면 꽤나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