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그루


탐그루는 작가 김상현의 처녀작으로 98년에 출간된 한국 판타지의 1세대 격인 작품이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1세대 작품들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유명한 작품은 아니다.

사실 판매량도 그렇게까지 높지 않은 줄 알았는데 내가 본 책이 4쇄본인 걸 보면 그렇게까지 판매량이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판타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언급이 안 된다;

개인적으로는 예전부터 게임과 관련된 판타지라는 것, 그리고 개념작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정말 읽고 싶었는데 어찌 하다보니 계속 못 읽다가 대학교 입학 후,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이 있는 걸 발견하고 얼마 전부터 읽기 시작했다.

탐그루는 확실히 여러모로 독특한 작품이다.

처음 탐그루를 읽기 시작하면 근미래의 모습이 등장한다. 인터넷이 아닌 어스넷을 사용하는 시대,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시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발전된 온라인 게임, 담배도 주문하면 바로 오는 편한 시스템, 그렇지만 뭔가 억압되어보이는 근미래의 모습.

그리고 이러한 세계에서 현실편의 주인공인 비류(게임 중 닉네임)는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미성년자로 등장하는데 이야기는 비류가 젯나이트라는 노인에게 이상한 랩탑을 받으면서 시작하게 된다.

랩탑 안에 들어있던 프로그램은 영혼의 에뮬레이터, 즉 사람의 영혼을 캡쳐해서 컴퓨터 상으로 옮긴 존재인 세헤라자드.

세헤라자드는 비류에게 자신을 삭제하지 않는 조건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고 그것이 바로 탐그루 세계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렇게 두 개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다가 2부부터는 비류, 수르카, 라이짐 이렇게 3명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나의 책에서 3가지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또, 3가지 시점의 이야기가 풍기는 분위기가 다른게 비류의 이야기인 현실편 이야기는 SF분위기도 많이나고 어떠한 음모를 밝혀내는 듯한, 그리고 조금 우울한 분위기가 많이 풍긴다면 수르카의 관점에서 보는 이야기는 판타지 모험물을 읽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라이짐의 시점에서 보는 이야기는 판타지를 배경으로 한 정치, 전쟁물의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 처음에는 비류 시점의 이야기가 재밌었지만 가면 갈수록 3가지 이야기 모두 몰입도가 높아졌다.

여기서 등장하는 탐그루의 세계는 얼핏보면 기존에 많이 보아오던 중세 유럽풍의 판타지 같지만 또 여러가지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마법이 가장 독특하다. 이 세계관에서 마음은 마법으로 마법의 말이 존재하긴 하지만 결국 마음을 강하게 먹으면 마법을 구현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 계속해서 고대의 문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지간히 눈치없는 사람이라도 탐그루에서 언급하는 고대 문명이란 20~21세기 지구, 특히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2부의 부제에 보면 아모리카 대륙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거 아메리카 대륙이다;;

그 외에도 뮤라는 생명체, 뱀파이어 혈족의 마법, 고대 문명의 후예인 아타카파 공화국과 퇼른, 세개의 세력으로 나뉘어져있는 왕국, 한국의 단군신화와 비슷한 신화를 가진 훈족 등 다른 판타지 소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요소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수르카 쪽 이야기의 경우 계속해서 판타지 모험물의 형태를 보여주지만 2부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개인적으로는 아타파카 공화국의 등장부터 분위기가 좀 달라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뭐랄까...기괴하다고나 해야할까; 빙하 위에서의 이야기나 산맥에서 얼어죽을 뻔한 이야기 등은 하여간 좀 기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스토리 전개 부분도 뭔가 폭발적으로 재밌다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지만 한 번 잡으면 주구장창 읽게 만드는, 묘한 몰입도가 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스토리 라인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일단 읽으면서 가끔 느꼈던게 저 인물이 도대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 장면들이 있었다. 아니 이해가 안 간다기보다는 조금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확하게 어떤 장면이라고 콕 집지는 못하겠지만 중간중간 저런 대사나 행동은 왜 하는걸까라는 생각이 든 부분도 몇몇 군데 있었다.

그리고 인물과 인물간의 대사에서도 뭔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 책을 읽을 때 그냥 쭉 읽어내려가는 스타일인데 탐그루의 경우 읽다가 '이게 뭔 소리야'라는 생각으로 되돌아가서 읽었던 부분이 유난히 많았던 것 같다.

뭐...위에 것들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 도폭공룡 2011.11.25 22:51 ADDR 수정/삭제 답글

    당시 탐그루는 라디오 광고까지 했었죠. 알게 모르게 많이 팔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탐그루라는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점은, 작가 김상현은 공식적이고 전통적인 문학창작훈련을 받았다는 거거든요. 보통 대부분의 한국 판타지 작가들이 독학으로 창작을 연습하는 것과는 차이가 좀 있어요. 물론 소설이라는게 그런 연습과정을 거친다고 잘 쓸수 있다는 보장은 없는 거지만. 어쨌든 탐그루를 보면 전통적인 문예창작 '기술'들이 상당히 많이 쓰여있죠. 솔직히 말해서 그런 기술을 쓴다고 무조건 좋은 소설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기술을 쓰는 데 급급해서 기술을 위한 기술이 된 부분도 많지만 중요한 특징이죠.

    • 성외래객 2011.11.25 23:15 신고 수정/삭제

      라디오 광고까지 했었나요? 오, 명상이 어느 정도 힘 좀 썼군요ㅎㅎ 하긴, 탐그루 중고가 무척이나 많이 돌아다니느 걸 보면 알게모르게 많이 팔리긴 팔렸나 봅니다.

      확실히 김상현 작가의 글을 보다보면 이 사람은 그래도 작품을 쓰면서 글솜씨를 길렀다기보다는 어느 정도 교육을 받고 글을 썼다는 느낌을 받긴 했습니다. 읽을 당시에는 막연히 느꼈던 부분인데 도폭공룡 님의 글을 읽고나니 뭔가 명확해지는 것 같군요ㅎㅎ

  • 탐그룽우우ㅜ 2013.01.14 00:17 ADDR 수정/삭제 답글

    확실히 묘한 매력이있는 책이죠..탐그루

    • 성외래객 2013.01.14 00:31 신고 수정/삭제

      이 책이 나온지 벌써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독창적인 설정이나 탐그루 특유의 분위기는 지금 봐도 참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ㅎ

  • 구매자 2014.03.05 11:35 ADDR 수정/삭제 답글

    탐그루 4권까지 구매한 ㅋㅋㅋ 구매자 여깄어요~~~~

    • 성외래객 2014.03.08 12:18 신고 수정/삭제

      엔딩이 참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 장르문학계에서는 독특한 포지션을 보여준 작품인만큼 전권 구매하셨으면 더 좋으셨을텐데요ㅎㅎ

  • 유동닉 2015.03.05 16:53 ADDR 수정/삭제 답글

    우와! 위에 저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 분이 있네!? 라고 생각했더니... 제가 예전에 쓰던 닉네임 뒤집은거(...) 4년 전에 제가 쓴 덧글이었군요.

    지금 와서 생각하는 거지만, 탐그루의 허탈한 엔딩은 작가의 문학적 자의식 과잉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원래 소설을 쓰기 위해 문장의 기술을 활용하는 건데, 탐그루를 쓰던 당시의 김상현은 문장의 기술을 활용해 보기 위해 소설을 쓰는 상태에 가깝지 않나 싶거든요. 저도 탐그루 읽으면서 턱턱 걸린다고 생각한 게, 좀 모호한 표현이지만... 일단 소설을 쓰면서 여러 가지 기술들을 필요한 자리에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게 아니라, 특정 기술을 써보기 위해 소설의 각 부분들을 거기 맞춰 써 버렸어요. 지금 언뜻 기억나는게... 그 무슨 도시에서 '헌다이' 가문과 '세스타' 가문이라는 '자이벌' 가문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오고, 거기 학교 묘사에서 '야'간 마법 '자'각의 '시간'이 나오고, 라면 이야기가 나오고, 교수의 강의가 악의적인 색깔론으로 해석되는 장면이 나오고... 등등등. 작가는 알레고리 기법으로 현실을 풍자해 보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그게 죄다 한 부분에 몰려있으니 당연히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과부하가 걸리죠.

    결말부 역시 대충 쓰거나 쓰다 만 거라기 보다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결말을 불확실하게 처리해서 독자의 몫을 남겨주려다가 그게 너무 의도적으로 처리되어 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신사회 2021.02.09 13:12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도 중고서적 구매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봤다가 탐그루의 엔딩을 보고 충격먹어서 포기했습니다...
    세헤라자드와 마지막 신은 정말 여운이 남고 애달프죠 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