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호

                             
                               흑호 1
                             10점

윤현승 작가의 세번째 장편소설 흑호.

소설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딘가에서 작가는 세번째 작품에서 가장 많이 변한다는 소리를 한 번쯤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흑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크문은 흥미로운 전투씬과 강력한 캐릭터성으로 신인 작가로서 괜찮은 가능성을 보여주긴 했지만 과도한 선정성 등으로 비판을 받았고 헬파이어는 괜찮은 시도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세번째 작품인 흑호는 기존 작품들의 아쉬움을 모두 만회하고도 남을 만한 작품이었다. 기존 작품에서 보여준 윤현승 작가의 장점만을 모아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흑호다.

우선 흑호는 지금봐도 꽤나 독특한 동양적 판타지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도 동양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는 그리 많지 않은데 흑호가 나온 건 2001년 경이었으니 당시로서는 꽤나 파격적인 시도라 할 만하다.

조선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동혜라는 국가를 배경으로 도깨비, 뫼신, 귀신 등 우리의 전통 설화에서 한번쯤을 들어봤을 법한 소재들을 가져와 세계관을 구성하고 있는데, 이야기 구조 역시 한국 전통설화의 향수를 품고 있다.

흑호의 힘을 얻은 진세희라는 주인공이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타천이라는 괴수에게 복수하려한다는 것이 흑호의 기본 줄거리인데 이야기는 하나로 쭉 이어지지만 각 챕터는 옛날 할머니가 해주던 무서운 이야기의 느낌을 풍긴다. 그리고 세희는 각 챕터에서 벌어진 사건을 해결하며 복수의 길로 한 걸음씩 다가가게 된다. 

윤현승 작가는 다크문에서 신인 작가답지 않게 캐릭터들의 개성을 잘 그려내었는데 그건 흑호에서도 잘 계승되었다. 내성적인 것 같지만 강인한 주인공 세희, 장난기많은 구미호 지호, 우직한 검사 싸리비, 그리고 청수관의 수민, 진우, 진석, 수진, 진영까지. 

각 캐릭터들은 강력한 개성을 가지고 움직이며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한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에서 검 하나만큼은 최고인 세희의 스승, 정수민이라는 인물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윤현승 작가의 장기 중 하나인 흥미로운 전투씬 역시 흑호는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야기 후반 각 인물들의 시점을 오고가며 펼쳐지는 전투씬은 그야말로 발군.

그 밖에도 2권에서 한수라는 용과 싸우는 장면이라던지 5권에서 신돈이라는 뫼신과의 전투, 그리고 타천과의 전투씬 등 흑호에는 인상깊은 장면들이 무척이나 많다.

그 중에서도 5권에서 타천이 청수관을 습격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세희가 느끼는 절망과 슬픔. 정말 오랜만에 주인공에 감정에 깊이 동화되었던 것 같다.

거기에 기존 윤현승 작가의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부분들이 흑호에서는 상당부분 개선되었다.

다크문에서 가장 크게 비판받은 부분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과도한 잔혹함과 지나친 선정성이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잔인한 묘사가 종종 나오곤 하지만 다크문에서처럼 눈쌀을 찌푸릴 정도의 묘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흑호에서도 종종 선정적인 장면이 등장하긴 하지만 다크문의 선정성과는 비교를 거부한다. 정말 수위가 대폭 낮아졌다.

또, 헬파이어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 윤현승 작가 특유의 재기발랄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윤현승 작가 특유의 느낌이 잘 살아있으며 그 밖에도 헬파이어에서 아쉬웠던 부분들이 흑호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흑호 서문에서 윤현승 작가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를 많이 강조했는데 그러한 그의 도전은 무척이나 성공적이었다고 생각된다.

다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무리다.

후반부의 전투씬은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무척 재밌게 그려졌지만, 7권의 첫 챕터까지만 하더라도 이번 권으로 이 책이 완결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을 정도였던지라 갑작스럽게 등장한 최종장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그려지고 있는 전투씬 역시 한 권 분량만 더 투자했더라면 좀 더 괜찮은 장면들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이 부분은 작가가 조기종결의 압박으로 급하게 마무리지었다라는 설이 있어 까기가 조금 그렇다; 실제로 윤현승 작가는 흑호의 마무리를 아쉬워하는 뉘앙스를 많이 풍겼고 2008년에서는 흑호의 리메이크작인 뫼신사냥꾼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이 작품이 헬파이어만큼이나 장르문학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각종 포털에서 이 작품을 검색하면 나오는 글은 거의 손에 꼽을 정도고 장르문학 커뮤니티에서도 잘 언급이 되지 않는다.

이후에 나온 하얀 늑대들이 성공하고 뫼신사냥꾼이 큰 주목을 받으면서 이 작품도 잠깐 언급이 되긴 했지만 그 때에는 이미 흑호라는 책 자체를 구하기 힘들었던 때라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접해보지 못한 책이 되어버렸다.

윤현승 작가의 팬들 중에는 하얀 늑대들보다 흑호를 높게 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괜찮은 작품인데 많이 알려지디 않아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야말로 비운의 명작이랄까.
  • 카오스 2011.10.24 22:02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두 흑호 다시읽구싶어서 텍본찾아봤는데 전혀 검색안되드라구요 ㅜㅜ
    슬프네염 ㅜㅜ

    • 성외래객 2011.10.26 08:41 신고 수정/삭제

      하얀 늑대들 이전 작은 다크문을 제외하고는 구하기 힘들죠; 저도 제가 책으로 구입한 것 제외하고는 다른 곳에서 흑호를 본 적이 없습니다;

  • 새누 2013.03.06 14:37 ADDR 수정/삭제 답글

    현재 뫼신사냥꾼의 2부인가? 그거 쓰신다는 애기는 들었는데 말이죠.
    빨리 나오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흑호보다는 뫼신 사냥군이 더 읽기가 편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 성외래객 2013.03.10 12:40 신고 수정/삭제

      어제던가요? 드디어 예약판매가 시작되었더군요ㅎㅎ
      실제 배송일은 3월 27일인가 그렇지만;

      흑호도 재미있게 봤지만, 흑호 이후 하얀 늑대들, 더스크 워치 등을 발표하며 윤현승 작가의 실력이 더욱 좋아졌기 때문에, 리메이크 된 뫼신사냥꾼도 기대 중입니다ㅎ

  • 아하 2013.09.15 23:11 ADDR 수정/삭제 답글

    전 흑호랑 뫼신 사냥꾼이랑 완전히 다른 작품인줄 알아서 흑호 리뷰 보다가 내용이 비슷해서 어어? 하고 있었습니다. ㅋㅋㅋㅋ 리메이크 작이었구나 ㅋㅋㅋ 그나저나 헬파이어 앞부분이 인상적이어서 완결까지 다 안 읽고도 아직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작가님 꺼였네요 우왕... 어쩐지 필력이 폭팔하더라..

    • 성외래객 2013.09.19 13:57 신고 수정/삭제

      뫼신사낭꾼이 나오기 전에, 윤현승 작가 스스로도 흑호에서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한 두 차례 언급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결국 작가 스스로가 아쉬웠던 점을 보완하여 뫼신사냥꾼으로 리메이크까지 하더군요ㅎㅎ

      헬파이어의 경우 1권만 하더라도 역시 윤현승 작가라는 소리가 나오지만 2권은 좀 아쉬웠단 작품입니다. 뭐랄까, 윤현승 작가답지 않게 너무 평이한 전개로 갔다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