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코난 극장판 7기:미궁의 십자로(2003) - 작화에 묻힌 각본

 

  미궁의 십자로는 명탐정 코난 극장판 중에서는 다소 이질적인 느낌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미궁의 십자로 이전 작품들은 대체로 극장판다운 화려한 액션과 추리를 조합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경향을 보였다. 6기 베이커가의 망령의 경우 상대적으로 액션씬이 적긴 했지만, 그래도 액션과 추리의 조합이라는 큰 틀 자체는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미궁의 십자로는 전작들과는 달리 액션이 아닌 아름다운 작화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액션씬이 아예 배제된 건 아니지만, 미궁의 십자로는 시리즈에서 손꼽힐 정도로 액션씬이 적은 편이다. 그나마 나오는 액션씬도 치고박고 싸우는 정도이며, 이전까지 거의 공식에 가깝게 등장했던 폭파씬 등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덕분에 미궁의 십자로는 전작들과 비교하면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잔잔한 편이다. 작중 클라이막스라고 할만한 부분도 전작들에 비하면 비장미나 긴장감이 덜한 편이며, 극장판 최초로 신이치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긴박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는다.    

 

  또한, 미궁의 십자로는 교토를 배경으로 한만큼 이전작들에 비하면 일본적인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는데, 이 부분 역시 기존의 작품들과는 차별화되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미궁의 십자로는 지금까지의 시리즈와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이 되었는데, 일단 매너리즘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시도에 도전했다는 사실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너무 새로운 시도에만 초점을 맞춘 탓일까? 미궁의 십자로는 시리즈에서 손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작화를 보여주는데에는 성공했지만, 작품의 기반이 되는 스토리에서는 다소 미흡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 미궁의 십자로 이전 작품들에서도 스토리가 미흡한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전작들이 내용 상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작품 자체의 재미는 어느 정도 유지했다면, 미궁의 십자로는 내용 상의 이렇다할 결함은 없었지만, 작품 자체의 재미 면에서는 다소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놉시스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작품의 잔잔한 분위기와 맞물려 각본 자체가 다소 느슨하고 그로 인해 작품의 긴장감이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었는데, 이로 인하여 이전작들에 비해 몰입해서 보기도 어려웠고, 상대적으로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도 적은 편이었다.

 

  6기 베이커가의 망령이 새로운 시도는 물론, 탁월한 몰입감을 선사하며 재미와 작품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에 비교한다면, 미궁의 십자로는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시도 자체에 많은 비중을 두다 재미라는 요소를 간과한 것 같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