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V건담 - 시리즈 사상 가장 잔혹한 작품

 

  기동전사 건담 F91의 실패로 2세대 우주세기의 시작을 알리려던 토미노 감독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기동전사 건담 F91의 실패로부터 2년 뒤인, 1993년 토미노 감독은 다시 한 번 2세대 우주세기에 도전하게 된다.

 

  그렇게 기동전사 건담ZZ로부터 거의 8년 만에 발표된 TV판 건담 시리즈인 기동전사 V 건담은 기동전사 건담 F91과 마찬가지로 아무로와 샤아가 없는 2세대 우주세기를 그리려고 했기에 역습의 샤아로부터 아주 먼 미래를 배경으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시키게 된다. 기존 작품들과 시대적으로는 연결되지만, 실질적인 접점은 없는 셈이다.

  하지만 기동전사 V건담은 지금까지의 우주세기가 보여주었던 전쟁을 통한 소년의 성장담이라는 기본적인 시놉시스는 따르고 있는데, 여기서 기존 작품들과 한 가지 차별점을 둔 게 바로 내용의 잔혹함이다.

 

  기동전사 V건담은 이전까지의 어떤 작품보다도 전쟁을 잔혹하게 묘사하고 있다. 물론 TV판이라는 한계상 정말로 하드코어한 장면이 등장하지 않지만, 직접적인 묘사가 없었을 뿐, 길로틴에 처형당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등, 기동전사 V건담의 잔혹함은 이전 시리즈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특히 기동전사 V건담의 주인공인 웃소 에빈은 역대 최연소 파일럿으로 작중에서도 어린애 취급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어린 주인공 앞에서 주변인물들이 처참하게 죽어나가다보니, 기동전사 V건담의 잔혹함은 더욱 두드러진다.

  또한, 기동전사 V건담은 잔혹함은 단순히 잔인한 묘사 뿐만 아니라 전쟁 중에 서서히 광기로 치달아가는 등장인물들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는데, 대표적으로 건담 3대 악녀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카테지나 루스를 들 수 있다. 카테지나는 초반부만 하더라도 어느 정도 강단이 있는 젊은 아가씨 정도로 묘사되지만, 전쟁이 진행될수록 서서히 광기에 매몰되는 모습을 보이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제정신이라고는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렇듯 기동전사 V건담은 시리즈 사상 가장 잔혹한 작품이라는 평이 주를 이룰 정도로 이전까지의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노선을 걷게 되는데, 전작과의 차별화라는 관점에서 이러한 시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기동전사 V건담의 잔혹한 묘사는 흥행부진으로 이어지게 된다.

  사실 기동전사 V건담은 작화만 놓고본다면, 성인보다는 저연령층을 타겟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 웃소가 역대 최연소 파일럿이라는 설정만 봐도 적어도 처음 기획단계에서는 저연령층을 타겟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문제는 앞서 언급한대로 기동전사 V건담은 역대 시리즈 중 가장 잔혹한 작품이라는 평이 붙을 정도로 잔인한 묘사가 주를 이루는 작품이었고, 이는 저연령층의 외면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성인들에게는 아동용 작품이라는 편견으로 인해 외면당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기동전사 V건담은 역대 시리즈 중에서 기동신세기 건담X와 더불어 팬층이 얇은 편이며, 관련 미디어믹스도 비교적 적은 편이다. 하지만 기동전사 V건담은 단순히 흥행성적만 놓고 실패했다고 말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은 작품이다.

 

  비록 잔혹한 묘사가 다소 과하다는 느낌을 안겨주긴 했지만, 이러한 잔혹한 묘사는 이전까지의 어떤 시리즈보다도 전쟁의 비극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데 성공했으며, 이러한 비극을 기반으로 토미노 특유의 드라마틱한 전개도 탄탄하게 전개되었다. 물론 토미노 본인은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때 제작했기에 엉망진창인 작품이었다며 스스로 비판하고 있긴 하지만, 기동전사 V건담은 특별히 무리수를 던지는 부분 없이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갔다. 특히 수준 높은 작화와 연출을 기반으로 전개된 마지막 결전은 역대 시리즈 중에서도 손꼽을만하며, 카테지나와 샤크티의 마지막 대화를 통한 엔딩의 여운은 우주세기의 마지막 시대를 그린 작품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여겨진다.

  그 밖에도 최초 웃소의 주역 기체였으나 작품이 진행될수록 양산화된 빅토리 건담이라든가, 양산화라는 설정에서 기반된 다른 시리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웃소의 자폭식 전투법, 그리고 후반부에 등장해 거대한 빛의 날개를 형성하며 우주세기 최강의 건담으로서의 위용을 과시한 V2건담과 같은 요소들은 이전 작품들과는 차별화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이렇듯 기동전사 V건담은 흥행 면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단순히 흥행성적만으로 평가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결과적으로는 흥행에 독이 되긴 했지만, 이전 시리즈와는 차별화되는 잔혹한 묘사는 대대로 내려오는 우주세기의 전쟁을 통한 소년의 성장담이라는 주제를 살리는데 부족함이 없었으며, 여러 인간 군상의 드라마가 맞물리며 긴장감을 가중시키는 전개는 과연 토미노라는 소리가 나올 만했다. 다만, 기동전사 건담 F91, 기동전사 V건담의 연이은 흥행실패는 사실상 2세대 우주세기 계획을 종결시키게 되었고, 이후 기동전사 건담 UC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주세기의 애니화는 일년전쟁 관련작을 내거나 기존 작품의 리메이크 정도에 머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