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건담 0080:주머니 속의 전쟁(1989) - 토미노가 없는 건담의 기반을 세우다

 

  역습의 샤아로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는 사실상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반다이나 선라이즈 입장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 계에 한 획을 그은 걸 넘어, 건프라라는 새로운 시장을 탄생시킨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를 이대로 끝내버리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역습의 샤아로 정점을 찍은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고, Z건담 이후 쉼없이 달려온 토미노를 곧바로 후속 작품에 투입시킨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반다이와 선라이즈는 이러한 문제점들로 인해 여러가지 고민을 한 끝에, 우주세기의 정사가 아닌 외전을 토미노가 아닌 다른 감독이 맡아서 제작한다는 방침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방침을 기반으로 제작된 작품이 바로 기동전사 건담 0080:주머니 속의 전쟁이다.

  주머니 속의 전쟁은 다른 시리즈에 비하면 꽤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건담의 등장씬을 최소화시켰다는 점이다. 분량 자체도 6회로 짧긴 하지만, 주머니 속의 전쟁에서 건담이 등장하는 씬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으며, 이로 인해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에서 빠뜨릴 수 없는 모빌슈츠 간의 공방전도 2~3차례 정도로 매우 적은 편이다. 주머니 속의 전쟁 이후로도 수많은 건담 시리즈가 등장했지만, 이렇게까지 모빌슈츠의 비중이 적은 작품은 없었다.

 

  이렇게 모빌슈츠의 비중을 줄인 대신, 주머니 속의 전쟁은 토미노가 최초에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를 통해 추구한 주제의식을 극대화하는데 노력을 기울인다. 주머니 속의 전쟁은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모빌슈츠 파일럿이 아닌 민간인인 알이 주인공인데, 알은 파일럿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시리즈 사상 최연소 주인공으로 작중에서의 나이는 11세에 불과하다.

 

  주머니 속의 전쟁은 이러한 알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가는데, 그저 모빌슈츠라는 멋진 기체에 열광하던 순진무구하던 아이가 전쟁의 실체와 그로 인한 비극을 알아가는 모습은 퍼스트 건담의 주인공 아무로의 성장과정과 맞닿아있다. 다만, 알이 너무 어리다는 점, 그리고 직접 모빌슈츠를 조종할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는 점은 전쟁의 비극을 더욱 심화시켜 보여준다.

 

  주머니 속의 전쟁은 철저하게 외전이라는 입장에 맞추어 만들어진 작품이기에 우주세기라는 역사에 미친 영향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이로 인해 타 작품과의 연관성도 매우 적은 편이다. 하지만 주머니 속의 전쟁은 토미노가 만들어온 건담의 주제의식은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색채를 만들어내었고, 상업적으로도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두며, 이후 토미노 없이도 시리즈를 이어나갈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