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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판타지 2012/05/17 23:02

 

데로드 앤 데블랑은 한국 판타지 1세대의 시기를 화려하게 수놓은 작품 중에 하나다. 지금이야 이상혁 작가의 인기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데로드 앤 데블랑 - 아르트레스 - 하르마탄으로 이어지는 시기의 이상혁 작가의 인기는 상당한 편이었으며 한국의 대표적인 장르문학 작가를 언급할 때 종종 언급될 정도로 굳건한 팬덤을 구축한 작가였다.

 

그 인기를 확인시켜주는 것 중 하나가 KBS에서 진행한 라디오드라마다. KBS에서는 2000년대 초쯤 한국의 장르문학들을 라디오드라마로 만들어 방송했는데, 첫 작품이 드래곤 라자였고, 두번째 작품이 데로드 앤 데블랑이었다. 그리고 세번째 작품은 복제인간과 관련된 작품이었는데,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작품이다(...)

 

어쨌거나 드래곤 라자에 이어 두번째로 라디오 드라마로 제작될 정도로 이 당시 데로드 앤 데블랑의 인기는 대단했다.  

 

사실 데로드 앤 데블랑은 굉장히 신파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진 작품이다. 작품 후반부에서서야 주인공의 불행이 어느정도 계획된 것이었다는 설정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란테르트는 한국 장르문학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불행한 인생을 살다간 인물이다.

 

불행의 끝은 어디인가 싶을 정도로 그는 참으로 많은 불행을 겪게 되는데, 대부분의 불행은 누군가의 죽음을 동반하고 있다. 그렇기에 데로드 앤 데블랑은 유독 주조연급 인물들이 죽어나가는 장면이 많은 편인데, 이 부분은 이 작품의 가장 큰 강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이 부분을 장점으로 꼽는 사람들은 데로드 앤 데블랑을 보며 많이 울었다는 이야기도 하고, 정말로 감동적인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이 부분을 단점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는 비판을 하곤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이 비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긴 하다. 어린 시절에도 다소 작위적인 연출이라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최근 읽었을 때에는 이건 좀 지나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데로드 앤 데블랑에는 신파적인 장면이 가득하다. 특히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끝이 없는 말줄임표의 압박은 독서를 방해할 정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로드 앤 데블랑에 등장하는 신파는 세월을 관통하는 힘이 있다고 여겨진다. 이 작품을 처음 접하고 10년이 지나 다시 봤을 때, 비록 유치한 감이 있긴 했지만 이 작품이 가진 신파의 힘이 녹록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녀작인 걸 감안해도 문체는 굉장히 미숙한 편이었고, 스토리도 다소 중구난방이었는데다가, 너무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신파적인 연출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로드 앤 데블랑의 장면 하나하나는 여전히 슬픈 느낌을 간직하고 있었다. 확실히 이 시기의 이상혁 작가는 여러모로 미숙한 부분을 많이 보여준 작가였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감정선 하나만큼은 잘 살려내지 않았나 싶다.

 

신파적인 부분 외에도 데로드 앤 데블랑은 지금의 관점에서 봤을 때 단점이 많은 작품이다. 앞서 스토리가 중구난방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데로드 앤 데블랑은 8권 3부작으로 각 시리즈에는 메인 스토리가 존재하지만, 중간중간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이 많은 편이라 글의 몰입감을 상당부분 저하시키는 편이다.

 

자잘한 에피소드가 한 두 번 등장하면 모르겠지만, 작품 전반에 걸쳐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많으며, 각각의 에피소드는 어느 정도 뒷이야기에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동시대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면 연결성이 다소 느슨한 편이다.

 

그런 데다가 데로드 앤 데블랑의 큰 장점 중 하나인 설정은 전반적으로 슬레이어즈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특히 마족의 체계를 세밀하게 나눈 부분은 슬레이어즈의 느낌이 강하게 묻어난다. 물론 그렇다고 표절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소리다. 다만 확실히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걸 감안해도, 여전히 데로드 앤 데블랑은 한 시대를 수놓을 만한 명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여전히 이 작품이 가진 신파의 힘은 대단했으며, 스토리나 설정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글을 읽어나가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그 부분은 처녀작 특유의 열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상혁 작가는 이후 아르트레스와 하르마탄에서 진일보한 글솜씨를 보여주지만, 데로드 앤 데블랑을 낼 당시만 하더라도 상당히 모자른 점이 많은 작가였다. 그러나 데로드 앤 데블랑 곳곳에는 작가가 정말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썼다는 느낌을 주는 부분이 곳곳에 산재해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열정은 작품의 재미로 이어졌다. 데로드 앤 데블랑은 신파의 힘을 제외하고서라도 여전히 책 읽는 맛을 주는 작품이었다. 어떨 때는 뻔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다소 느슨한 게 아닌가라는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이야기 전체의 긴장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10여년이 지난 지금에봐도 여전히 재미라는 점에서는 괜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확실히 데로드 앤 데블랑은 동시대에 나온 1세대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여러모로 떨어지는 부분이 많은 작품이다. 그러나 한 시대를 풍미한 명작에는 역시나 이유가 있는 법이다. 세월이 지나도 많은 이들을 감동시킨 감정선과 재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p.s

처녀작인 걸 떠나서 데로드 앤 데블랑은 이상혁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유는 작가가 기획한 테미시아 세계관의 작품 중 첫번째 작품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 레카르도 전기를 먼저 쓰기도 했고, 후에 출판까지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출판순서만 따지자면 데로드 앤 데블랑이 먼저다.

 

일명 테미시아 연대기라고도 불리는 이상혁의 작품들은 펜테스터 행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레카르도 전기 -  데로드 앤 데블랑 - 아르트레스 - 하르마탄-  눈의 나라 얼음의 꽃의 순으로 연결되며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마법세기 르네상스 역시 이 세계관의 작품이다.

 

이렇듯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이상혁 작가는 테미시아 세계관의 이야기를 써왔는데, 최근에는 작품성과 상관없이 테미시아 세계관의 작품들이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했기에 이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후속작은 일단 중단된 상태다.

 

p.s2

이 작품을 언급하면서 표지를 안 집고 넘어갈 수가 없다.

 

위의 표지는 넥스비전 애장판의 표지고 원래 출판사는 문수미디어인데 이 출판사는 한국 장르문학 사에 길이길이 남을 표지를 만들어 지금까지도 까이고 있다. 팬들은 처음 넥스비전 애장판의 표지가 공개되었을 때,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

 

정말 무슨 생각으로 그런 표지를 만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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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내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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